따뜻한 바람이 살랑 부니 눈부시게 하얀 꽃잎이 온 천지를 물들인다. 봄이 왔나 싶어 때를 놓칠세라, 가족끼리 꽃놀이를 했다. 부산의 벚꽃 명소라 불리는 온천천을 시작으로 초량 산복도로, 시민공원, 어린이대공원을 다녀보니 비로소 봄을 맞은 것 같다. 나만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닌 모양이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거닐며 봄을 맞고 있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봄꽃 축제가 대부분 취소되었다는데, 꽃들이 사람을 초대했나 보다. 모두가 모여 즐기는 모습을 보면 축제가 열린 것이 분명 틀림없었다.

그런데 봄꽃의 축제는 과학교사인 내게 사실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과학의 축제’가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매년 4월은 ‘과학의 달’이다. 과학의 달은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의 발족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듬해 4월부터 관련 행사를 진행하면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이나 지자체 등이 주관하여 일상에서 과학기술 문화를 누리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니, 과학교사에게는 가장 큰 축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과학의 날’인 매년 4월 21일에는 과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과학기술의 진흥을 도모하고자 기념식을 개최하고,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에 대한 정부포상 및 장관 표창을 수여한다. 이날은 유네스코에서 제정한 매년 11월 10일 ‘세계 과학의 날’과는 별개인데, 우리나라처럼 별도의 과학 기념일을 제정한 국가는 드물다. 세종대왕이 자격루를 국가 표준시계로 반포한 8월 5일(음력 7월 1일)을 새로운 과학의 날로 변경하자는 결의안이 국회에서 한 차례 발의된 적 있지만, 아직까지 과학의 날을 없애자는 목소리는 없다.

사실 과학의 날은 1934년 4월 19일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를 목표로 국민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개최된 대대적인 국민계몽운동인 ‘과학데이(科學데이)’가 원조다. 근대 문명의 핵심으로서 과학기술의 진흥과 보급에 관심을 가졌던 당시 지식인들과 각계 인사들이 과학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국력을 키우고자 대중적인 과학 행사를 벌이기로 한 것이다. 계획 단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제1회 과학데이 행사에서 대중 강연, 자동차 퍼레이드, 과학 활동사진 상영, 연구소 견학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운영되었고, 행사장을 찾은 수천 명의 인파를 순식간에 과학으로 물들였다. 물론 일제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얼마 가지 않아 막을 내려야 했지만, 과학데이는 국민이 과학을 즐길 수 있었던 과학 축제였으며, 동시에 과학 지식 보급에 앞장선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대중화 운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에는 과학 대중화의 개념이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중요시하는 ‘대중의 과학 이해’를 넘어 과학기술을 둘러싼 논쟁이나 정책 결정에 대중이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대중의 과학 참여’가 강조되고 있다. 이는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으며, 동시에 과학기술이 문화로서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제1회 과학데이 행사가 열린 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과학기술이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오늘처럼. 아마 당시 지식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과 대중 사이의 간극은 현저히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올해 과학의 달 행사에는 무엇이 준비되고 있을까. 국립부산과학관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올해는 작년에 우주로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을 주제로 특별 강연 및 전시·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란다.

과학의 달을 맞이하여 마련된 특별한 행사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과학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도 든다. 봄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지만 잠깐 사이 떨어지는 꽃잎에 아쉬움이 들고 이내 무관심해지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과학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 그래도 괜찮다 생각해본다. 어김없이 봄은 올 테고, 과학의 축제는 계속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