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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와인과 이별

  •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  |   입력 : 2022-04-19 19:25:12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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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시인, 극작가이자 외교관이었던 폴 클로델은, “와인은 태양과 대지의 아들이다. 더불어 인간의 노력이라는 조산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와인은 세월을 견디는 인내와 숙성을 통해 우리를 위로한다. 숙성될수록 향과 맛이 깊어지고 온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질감은 헤어나지 못할 치명적 유혹으로 우릴 이끈다. 이쯤 되면 사랑이고 이별이고 될 대로 되라지. 와인 한잔 마시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해 질 녘 붉게 물든 아드리아해.
와인은 오랜 세월 동안 시인과 작곡가 등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는 매개체로 군림해왔다. 프랑스의 천재 시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산문집 ‘파리의 우울’에서 “늘 취해 있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고 했다. 보들레르와 인연이 있는 프랑스 와인, 샤스 스플린은 우울증을 앓던 보들레르가 이 와인을 마시면서 고질적인 정신장애를 해결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와인이다. ‘슬픔이여 안녕’이란 뜻으로 유명한 이 와인은 18세기 프랑스 화가 오디롱 르동이 와인의 맛에 반해 ‘샤스 스플린’이란 이름을 지어 헌납했다. 1821년 바이런이 이 와인을 마시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해 더 유명해진 와인이다.

베토벤은 쉽지 않았던 그의 인생 속에서 선천적으로 술을 좋아했다. 힘든 삶 속에서 와인은 고통을 덜어주는 일종의 마취제로 외롭고 힘든 삶 속에서 그를 위로하는 벗이었다. 베토벤이 와인을 마시면서 추구하려고 했던 음악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힘든 삶 속에서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대중을 생각했으며 가난한 이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사랑과 증오가 없는 작품은 나의 작품이라 할 수 없다”는 ‘푸치니’의 말처럼 사랑과 이별, 증오는 위대한 작곡가들의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활력소가 됐다. 오늘날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감동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이다. 음악에 취하든 와인에 취하든 무언가에 취해서 살아갈 순수한 열정이 있다는 것은 부럽고 행복한 일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서로 좋아 설렘으로 만나는 연인도, 관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만남도 모두 상대보다 자기를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에 서로 헤어지고 아파한다. 이별은 결국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 말고는 이별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두브로브니크에서 해 질 녘 아드리아해를 붉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밤새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를 흥얼거린 추억이 있다. 잊은 줄 알았는데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 있는 기억들. 우리는 서로 다른 이유로 만나고 헤어지는데 늘 비슷하게 아파하고 상처받는다.

‘다만 사랑 아닌 것으로/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이 아프고/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그러므로 이제/잊기로 한다/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일어서는 사람처럼/눈을 뜨고 먼 길을 바라보는/가을 새처럼/한꺼번에/한꺼번에 잊기로 한다’. -류근, ‘나에게 주는 시’ 중에서

와인 한잔에 취해 깊은 감동에 빠지고, 마시는 와인으로 많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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