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법당(陸法黨)’. 한때 한국정치를 풍미했던 말이다. 육사 출신 정치군인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후 법조인, 그중에서도 주로 서울대 법대 출신을 정부 요직에 기용한 데서 비롯된 유행어였다. 정통성이 취약한 데다 국정도 잘 몰랐던 군인들로선 한국 최고 학부를 나온 판·검사들이 필요했다. 이들을 정부와 여당에 적당히 전진 배치해 문민(文民) 이미지로 분칠하는 한편 뛰어난 머리도 빌려 국정운영 허점을 메우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군사정권의 불법적, 폭압적 DNA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유신헌법으로 대변되는 ‘종신독재’, 긴급조치로 인한 언론·표현의 자유 말살,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인혁당 사건,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으로 드러난 정경유착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 최고 엘리트들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와 법을 죽이는데 부역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항간에선 법을 도륙했다는 의미로 ‘육법당(戮法黨)’이라고 수군대곤 했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육법당을 떠올린 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초대 내각 명단을 보고서다. 서울대 법대 출신 장관 후보자가 무려 5명이나 됐던 것. 박진 외교, 권영세 통일, 한동훈 법무, 이상민 행안, 원희룡 국토장관 후보자가 그 면면이다. 정부의 최고정책심의기관인 국무회의를 기준으로 하면 6명으로 늘어난다. 국무회의 의장인 대통령에 취임할 윤 당선인 또한 학과동문이기 때문. 현재 정부조직법상 국무회의 구성인원은 대통령 포함해 20명.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30%를 같은 학과 선후배들로 채우게 된다.
특정학교 편중은 과거에도 종종 시빗거리가 됐다. 하지만 특정학과 출신의 이런 득세는 유례가 없다. 특히 외교·안보를 좌지우지하고, 검·경으로 대표되는 국가 사정(司正)을 책임지며, 여기다 SOC(사회간접자본) 건설과 부동산 정책의 키를 쥐게 된다. 정부 업무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 청문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임명되면 ‘육법(六法)정부’라는 별칭이 붙을 만하다. 물론 군사정권 때의 육법당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당시 주도권을 쥔 ‘무관’ 육사의 들러리였던 ‘문관’ 서울대 법대가 이젠 주인공이 됐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는 쿠데타가 아닌 민주적 선거를 통한 국민의 선택으로 탄생했다.
그럼에도 육법당의 어두운 추억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법 위반까진 아니더라도 일방적 국정운영, 기득권층 담합, 국민약속 무시 등 불통과 독선이 두드러진 탓이다. 서울대 법대 5명이 포함된 각료 명단을 두고 한 언론은 ‘육서영 전남친’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60대 평균 나이에 서울대와 영남 출신, 여기다 전 보수정권 인사, 남성 위주, 친한 사적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다수라는 의미다.
“통합과 협치”. 대선에서 0.73% 포인트 차이의 신승 뒤 윤 당선인의 첫 일성이었다. 그런데 이와 완전 동떨어진 인사다. 탕평은커녕 지나친 편중인사에 일제히 비판이 쏟아졌다. 윤 당선인은 의외로 큰 소리로 되받아쳤다. 지역 학교 성별 안배를 “자리 나눠 먹기”라고 일축했다. 오로지 “전문성과 실력”만을 보고 뽑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도덕성 검증에서 동티가 났다. 위장전입 농지법 위반 탈세의혹에다 ‘조국의 데칼코마니’로 불린 아빠찬스까지. 그래도 누구 하나 선뜻 백기를 들지 않았다. 자신이 병원장으로 있던 대학에 딸과 아들의 잇따른 편입은 누가 봐도 이해충돌 소지가 크다. 하지만 당선인 ‘40년 지기’ 정호영 보건복지 장관 후보자는 “윤리·도덕적으로 떳떳하다”고 했다. 이에 고무됐을까. 재벌기업의 사외이사로 고액 연봉을 받다 장관으로 직행하게 된 무려 7명 후보자도 이해충돌 우려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조차도 고쳐 매지 않는다’. 선조들의 공직윤리가 시궁창에 처박히기 직전이다.
“엘리트 기득권 세력의 짬짜미.” 이런 비판에 윤 당선인은 꿈쩍도 않을 태세다. “30대 장관이 많이 나올 것이다.” 청년층과의 약속도 꿀꺽해버린 그에게 여론도 큰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여기다 ‘검수완박’ 여야 중재안을 국민의힘이 뒤엎는 과정에선 ‘윤심(尹心)’ 논란이 불거졌다. 국회와 당을 청와대 출장소쯤으로 여겼던 육법당 시절 대통령 모습이 어른거린다. 더 큰 문제는 당시 대통령을 ‘전지전능 무오류’로 떠받들며 자리보전에만 급급했던 법률가 참모들의 행태가 오롯이 보인다는 점이다. 안보 공백에다 거액 예산낭비 우려에도 윤 당선인은 집무실 용산 이전을 밀어붙였다. 보수언론까지 뜨악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반대 일색이었다. 정작 내부에선 “아니 되옵니다”는 말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
과거 고시생들은 ‘육법(六法)전서’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헌법 민법 상법 등 6개 법이 법률의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육법정부’에서도 기본은 중요하다. 주권자인 국민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고 그 목소리를 경청하고, 섬기는 자세 말이다. 적어도 현재까진 기본과는 분명 거리가 느껴진다. 새삼 육법당을 떠올리는 이유다. 당연히 육법정부는 육법전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민 여론을 냉정하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변해야 한다. 그것도 하루빨리. 아까운 골든타임이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