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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수의 그림산책] 임득명의 ‘가교보월’

  • 황정수 미술평론가
  •  |   입력 : 2022-05-03 19:48:44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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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풍습 중에는 매우 낭만적인 행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답교놀이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밤 ‘다리(橋)’ 위를 오가며 달을 감상하는 놀이다. ‘다리(脚)’가 건강해지고 무병하며, 재앙을 물리친다는 세속적 믿음에 따른 것이다. 실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쁠 일이 없어 많은 사람이 연례행사로 즐겨 전국의 다리에서 행해졌다. 서울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주변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번화가였던 광통교(廣通橋) 수표교(水標橋) 주변에 많은 사람이 붐볐다.

임득명의 ‘가교보월’.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당시 이곳은 상업이 발달하여 많은 가게가 몰려 가장 번화한 동네였다. 또한 다리의 모습이 아름다워 이곳에서 달구경 하는 것이 제법 운치가 있었다. 보름날 밤의 정취를 느끼려는 선비들부터 평소 바깥나들이가 어려웠던 여인들이 이곳을 찾았고, 아이들은 어른들을 따라 나와 이리저리 뛰어놀았다. 광교에는 그 주변 사람만 온 것이 아니라 이곳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다른 지역 사람도 많이 찾았다. 요즘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많은 이가 종로 보신각(普信閣) 주변으로 모이는 것과 유사한 광경이었다.

조선 후기 어느 정월 보름날, 인왕산 자락 아래에 살던 서화가 임득명(林得明, 1767~1822)은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 규장각 서리였던 임득명은 중인 출신으로 글씨와 그림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시에도 능한 재주꾼이었다. 그는 중인 서화가들의 모임인 옥계시사(玉溪詩社)의 회원으로, 그들과 함께 시를 쓰고 ‘아회도(雅會圖)’를 그리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정선(鄭敾)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함께 규장각에 근무하던 이인문(李寅文)과 친했던 까닭인지 정선보다 더 섬세하고 담담한 모습이 많았다.

임득명의 ‘가교보월(街橋步月)’은 광통교에 나와 답교놀이를 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비스듬히 흐르는 강물 위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떠 있다. 다리 위에는 갓을 쓴 10여 명의 어른과 시동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사를 함께 하는 동인들과 달구경을 온 듯하다. 간결한 필치로 청계천과 천변의 건물, 천을 가로지른 다리를 그리고, 그 위에 인물을 배치한 솜씨가 매우 자연스럽다. 특히 청계천의 흐름을 대각선으로 배치한 구성은 매우 파격적이다. 조선시대의 그림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구성 방식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화면에 역동적인 움직임을 불어넣는다. 임득명이 이러한 화법을 구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규장각에 근무하면서 청나라에서 유입된 서양화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강약을 조절하여 푸른빛과 붉은빛을 사용한 채색법도 마치 서양화의 맑은 수채화를 보는 듯 신선하다. 그동안 조선 후기 화단에서 임득명의 존재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그림들은 매우 감각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격조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활동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이 그림을 통해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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