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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정은경 ‘덕분에’

  • 이은정 기자 ejlee@kookje.co.kr
  •  |   입력 : 2022-05-18 19:59:3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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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은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세포가 기능 저하를 일으키는 일종의 노화현상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로 발생하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기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단두대에 섰을 때 머리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고 한다. 스트레스와 백발의 상관관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이 떠오른다.

정 전 청장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진두지휘한 지 얼마 안돼 백발이 돼 모두를 짠하게 했다. ‘백발 투혼’을 벌였던 그가 4년10개월간의 다사다난한 임기를 마치고 지난 17일 ‘K-방역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 전 청장은 질병청의 전신인 국립보건원에서 역학담당관으로 1998년 5월 공직 생활을 시작해 이날 24년 만에 현장을 떠났다. 방역 최전선을 지킨 그에게 국내에선 ‘국민영웅’, 해외에선 ‘바이러스 헌터’라 불렀다.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하던 2020년, 매일 오후 2시 국민은 백발에 노란 점퍼를 입은 정 전 청장의 브리핑을 주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당시 언급했듯 정보에 입각한 분석으로 솔직하고 침착하게 발언하던 그를 다들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 BBC방송과 미국 타임지는 2020년 그를 ‘올해의 여성 100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했다.

정 전 청장은 ‘K-방역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3T(검사-추적·격리-치료) 전략을 수립해 확진자를 빠르게 찾아 격리했고, 신속 검사를 위한 드라이브 스루, QR코드 기반 전자출입명부, 무증상·경증환자 치료를 위한 생활치료센터 등 한국형 방역체계를 세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끌어온 ‘K-방역’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서, 이를 뒷받침해온 정 전 청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백신 도입 과정과 접종 이상 반응, 방역패스 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정치방역’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는 퇴임 당일 출석한 국회에서 “정치방역이 아닌 과학방역을 해왔다”며 “백신이나 치료제 등은 임상시험을 거쳐 근거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고, 거리두기나 사회적 정책들은 사회적 합의나 정치적인 판단이 들어가는 정책”이라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방역 최일선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덕분에 챌린지’ 수어를 하며 질병청을 떠났다. 그의 퇴임 소식에 여야를 떠나 정치권과 많은 국민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리는 그의 ‘백발투혼’ 덕분에 전대미문의 감염병인 코로나19 사태를 두려워하지 않고 극복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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