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 인류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다. ‘슬기로운 사람’이란 뜻을 가지는 이들은 대략 20만 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살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적 동물’이다!
동시에 그들은 서로 협력했다. 털이 없고 강하지 못해 추위와 천재지변에 취약하며, 빠르거나 날지도 못해 강한 동물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이들에게 협력은 가장 효과적인 생존전략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협력적 존재’다. 이런 협력적 태도는 약 1만 년 전 빙하기에 더 굳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혹한과 배고픔을 개인의 힘과 능력만으로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단의 생존과 번식은 ‘상호’ 협력만으로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 집단에 대한 ‘일방적’ 희생과 헌신도 자주 요구되었다. 그 속에 자신의 직계 후손이 포함되어 있을 때면 헌신은 필연적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타적 존재’다.
집단을 고려하며 협력을 선호하는 동시에 이타적인 태도는 장구한 세월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본능’으로 선택되었다. 제도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에게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적 생존은 이런 ‘사회적 본능’ 없이 설명될 수 없었다. 그는 그 본능을 ‘어버이 성향’으로 불렀다. 이 본능의 진화사는 이기적 본능보다 훨씬 장구하며 그 영향력도 강했다. 인류사 전체는 물론 오늘의 자본주의경제를 더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베블런은 경제학모델에 ‘사회적 존재’와 ‘이타적 본능’을 추가했다. 진화생물학이라는 자연과학이 이를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베블런 이전의 철학자들에게서도 이미 개진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했으며, 당시 아테네 시민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내 개인’으로 행동함으로써 정치공동체 폴리스를 수호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도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정의하면서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자유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철학자 그린 역시 ‘공동선’이 확보되지 않고 개인의 자아는 실현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사회주의자이기는커녕 무려 자유주의자다! 케인스경제학과 제도경제학을 포함하는 이른바 ‘비주류경제학’은 이런 인문학을 기반으로 삼아 경제학을 연구하고 경제정책을 제안한다. 여기서 ‘비주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없는 아웃사이더임을 의미한다.
비주류들은 자본주의경제가 불황에 빠질 때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이 난국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자재정론’을 말하는데, 이는 시장의 ‘주류’들이 강력한 권력과 자원에도 불구하고 이 난국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불황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가혹하다.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는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한데, 바로 세금이다. 비주류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인문학에 따라 사회적 존재들에게 증세에 대한 참여를 호소할 수 있다. 적자재정과 증세는 비주류경제학자들의 핵심적 정책수단이다.
하지만 모든 경제학자들이 이런 인문학과 정책수단에 동의하진 않는다. 주류경제학자들에게 호모 사피엔스는 개인적 존재인 동시에 이기적 존재다. 이런 존재는 ‘사회’와 ‘공동선’에 관심이 없다. 주류들의 호모 사피엔스는 증세에 저항한다. 그래서 가능한 세출을 줄여 균형재정을 달성해야 한다. 감세와 균형재정, 심지어 흑자재정은 주류경제학의 정책수단이다.
대한민국에서 이 정신에 가장 투철한 정부조직은 기획재정부다. 주류경제학의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종 국가고시를 통해 주류경제학의 철학과 정책을 철저히 연마한다. 고시과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비주류 문재인 정권의 정책에 대항해 균형재정을 고수하려 했던 건 나름 이해된다. 그게 그들의 인문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과 마주하자 ‘가불’ 추경까지 편성해 지출을 확대하는 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힘 있는 주류정권이기 때문이리라. 기재부의 이런 처세는 교활해 보인다.
한성안 좋은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