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권력 지형이 4년 만에 확 뒤집어졌다.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처럼 8년 전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다. 세월의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건만, 정치판은 지난 날로 되돌아갔다. 지방권력 구도를 바꿔치기 한 시민의 선택 결과다. 당선의 영광을 안은 인사들은 4년 뒤 시민의 판단을 다시 받아야 할 처지다. 권력의 시간을 허투로 쓰지 말고 제대로 된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후보 시절 유권자들을 향해 한없이 쏟아낸 ‘각오와 다짐의 말들’을 항상 새길 일이다.

지난 1일 치러진 제8회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부산시장을 비롯해 16개 구·군 기초단체장을 싹쓸이했다. 시의회 지역구 의원 42석 모두를 차지했다. 일선 구·군의회에서도 다수당이 됐다. 2014년 6월 4일 실시된 제6회 지방선거의 데자뷔 형국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부산선거에서 시장은 물론 기장군(무소속)을 제외한 기초단체장 15곳을 석권했다. 시의회 지역구 의원 42석도 다 차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4년간 장악했던 지방권력을 통째로 넘겼다. 2018년 6월 13일 제7회 지방선거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시장과 기초단체장 13명, 시의회 지역구 의원 38명을 배출하는 등 부산 정치판을 갈아엎었던 기세는 온데간데없다. 선거 뒤 각자 눈높이에 따라 이런저런 해석을 내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4년간 권력을 위임한 유권자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다시 지방권력을 잡았고, 민주당은 짧은 전성기를 끝냈다. 투표의 힘이다.

정치권력이 부침을 거듭한 지난 8년간 부산은 발전을 거듭했다. 산과 바다, 강을 아우르는 도시 구조는 엄청나게 변했다. 바다 매립의 결실인 부산항 북항 재개발로 땅이 넓어졌다. 도심에는 고층 아파트와 건물 숲이 이뤄졌고, 도시철도와 외곽순환도로의 지속적인 확충으로 이동 편리가 한층 더해졌다. 한때 논란이 벌어졌던 버스전용차로(BRT) 조성도 원활하게 진행돼 대중교통 위주의 정책이 자라 잡았다. 도로 곳곳에 위치했던 육교가 사라지는 등 사람 중심의 도시정책이 빛을 보고 있다.

부산에는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올 것이다. 북항 2단계 재개발에 이어 낙동강 변의 에코델타시티 건설, 그리고 100년 이상 부산 도심을 단절시켰던 경부선 철도(화명역~구포덕천통합역~가야차량기지) 지하화 등으로 사람 사는 공간이 갈수록 늘 전망이다. 이 밖에 지방권력이 향후 할 일이 태산 같기도 하다.

이제는 암울한 부산 미래를 걱정할 때다. 인구절벽의 심각성을 깨닫고 해결책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8년간 부산 인구는 쑥쑥 빠졌다. 2014년 351만 명선이었던 부산 인구는 2018년 344만 명대로 감소했다. 올해 5월에는 334만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4년 주기로 열리는 지방선거 때마다 부산 동구(주민등록인구현황 5월 기준 8만8222명) 인구 규모의 사람이 줄어든 셈이다.

최근에는 2034년‘300만 명대 인구 붕괴’가 온다는 통계청 자료가 발표됐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그 시기는 매년 앞당겨질 예정이다. 실제 부산 인구 300만 명대 붕괴 시기는 2019년 발표 때보다 2년 빨라졌다. 다음 지방선거 때는 부산에서 서구(10만3810명) 인구 규모가 사라지고, 그다음에는 영도구(10만9460명)만큼 증발할지 모른다.

유소년 인구(0~14세)는 급감하고, 65세 이상 고령자들은 급증하는 추세다. 노령 인구 중심의 ‘늙은 도시’로 치닫고 있다. 어린 자녀가 크면서 유모차 처리가 골칫거리로 떠오른 엄마들은 당근마켓에 노인 보행용 기구로 내놓고 있다. 부모들은 서울 가려는 자식들을 향해 “부산을 지켜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2029년과 2035년 개항 시점을 놓고 논쟁 중인 가덕신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부산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장밋빛 청사진의 혜택을 누릴 사람이 부족한 미래는 끔찍하다. 사람 살기 편해지고, 땅도 넓어지는 부산은 속 빈 강정이 될 판이다.

정국 흐름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다. 부산 권력도 중앙 정치권 움직임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우선 관심은 내 고장 살리기에 둬야 한다. 인구를 늘리고 젊은 도시 부산을 만드는 ‘실천의 그림’을 그려나갔으면 한다. 당장은 결혼 기피·출산율 저하 현상을 타파할 지역 맞춤형 정책 개발에 나서야 한다.

선거 결과를 놓고 견제와 균형, 다양성의 정치구도가 실종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반면 현안 해결을 통합적으로 하는 데 유리한 권력 구조가 미래 지향적으로 쓰인다면 긍정적이다. 시장과 기초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등이 한데 묶여 인구절벽 극복을 위해 지역별 특성을 속속들이 반영하는 지혜를 짜내고 실행한다면 더 없이 좋다. 권력을 몰아준 시민의 뜻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해본다. 부산의 미래를 걱정하는 심정이 그만큼 절박하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