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쇠침대’처럼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상대를 자신이 정한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는 여러 세력이나 기관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공정거래 촉진이라는 목표하에 산업실태나 국제거래관행,국제협약 등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기업을 잡아 자신이 정한 침대 길이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공정위가 내린 과징금에 대한 불복 행정소송에서 패소해 환급액이 과징금보다 많을 정도다. 2015~2020년 5년간 공정위가 담합, 시장지배력 남용행위 등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이유로 부과한 과징금 3조534억 원 중 행정소송 패소나 직권취소 등을 이유로 돌려준 환급액이 9869억 원에 달하고, 환급금이 과징금보다 더 많은 해도 있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번 기회에 해운업에 쇠침대의 위력을 제대로 보이겠다는 것인지, 동남아항로에서 멈추지 않고 한일·한중항로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준비 중이다. 필자는 해운업에 대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가 특별법인 해운법과 상충되는 법적 정당성을 결여한 행위이고, 정기선사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국제관행과도 맞지 않으며, 한중·한일 해운협정으로 인정된 국제관행이므로 중국을 비롯한 외국 정부와의 외교적 분쟁 발생 가능성이 있고, 부산항을 중심으로 과거 30여 년 국책으로 추진해 온 동북아 물류중심 정책의 근간을 위협하고 이웃 국가의 항만정책에 혜택을 줘 결과적으로는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지적해 왔다.
공정위 주장이 합리성을 얻으려면 한중·한일·동남아항로에서 우리 선사들이 담합으로 공정위가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할 정도로 큰 수익을 올렸는지, 우리 선사들의 담합이 운임인상으로 이어져 화주가 피해를 입었는지 검증이 필요하다. 첫째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려는 한일·한중·동남아항로는 실제로 선사 간 담합행위의 효과가 전혀 없는 시장이었다. 선사 간 담합이 효과를 발휘하면 해당 항로의 운임은 안정돼야 하지만 2003년~2019년 한중항로의 운임 변동성은 북미항로나 유럽항로,중일항로 등과 큰 차이가 없었고, 2008년 이전은 원양항로보다 한중항로의 운임 변동성이 더 높았다.
둘째 공정위 주장과 달리 중국 정부의 중일항로에 대한 개입이 이루어지자 중일항로뿐만 아니라 한중항로, 한일항로, 중-동남아, 일본-동남아, 한국-동남아항로도 유사한 운임 변동 패턴을 보였다. 이는 이들 항로가 상호 연결된 항로임을 말해준다. 한중항로에서 한국과 중국 선사의 담합이 기본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시장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선사들의 공동행위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중국 정부의 시장개입 조치였다. 한중항로는 2008년 이후부터는 원양항로보다 상대적으로 운임 변동성이 낮아지는데, 2008년부터 중국 정부가 중일항로에서 마이너스 운임이 계속되면서 중국의 국제무역에 필수불가결한 해상운송서비스의 지속가능성이 위협을 받아 운임덤핑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셋째 공정위 주장대로 선사 간 담합이 효과를 발휘했다면 선사들은 해당 기간 큰 이익을 얻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사들이 코로나 사태로 해상운임이 급등했던 최근 2년간을 제외하고는 낮은 운임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에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과거 20여 년간의 운임 변동과 선사의 수익, 매출액을 상관분석한 결과 양자 사이는 역상관관계였다. 이는 선사들이 담합으로 수익을 얻기는커녕 원가 수준의 낮은 운임을 제공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우리나라 대형화주들은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컨테이너 지체료나 체화료를 지불하지 않고 몇 개월이나 선사의 컨테이너를 무상 이용하는 갑질을 했지만 공정위는 그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한진해운이 대형화주로부터 체화료나 지체료만 제대로 받았어도 망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공정위가 진정으로 시작해야 할 일은 대형화주의 중소선사에 대한 갑질 금지부터다.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