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경제의 어려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1년 이후 부울경 제조업은 음의 성장을 기록한 해가 양의 성장을 한 해보다 더 많았다. 수출 의존적인 경제 구조 속에서 수출 시장의 성장 정체, 저가격 경쟁자들의 세계시장 진입, 전통산업의 재구조화가 지체된 결과다. 반면 부울경을 성장시킬 미래 산업의 신규투자는 정체되고 제조업을 대체할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육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2020년의 경제 성적표 역시 동남권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2020년 지역경제성장률(GRDP)을 보면 울산 -7.2%, 제주 -6.6%, 경남 -4.1%를 기록했다. 부산은 -2.9%로 인천, 경북과 함께 그 다음이었다. 울산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이유는 글로벌공급사슬 충격과 세계수요 정체가 결합된 탓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핵심 원료를 세계시장으로부터 수입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의 교란이 있을 때 큰 영향을 받는다. 부품 소재의 경우 중국 일본 미국 독일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에너지 철강 등 핵심 원자재도 거의 전량 수입한다. 동남권의 경우 석유화학 산업, 금속·철강 산업이 후방 산업을 구성하고 자동차 조선 기계 산업이 전방산업을 구성하기 때문에 주요 원자재 가격 변동은 지역 산업 수익성에 큰 영향을 준다.
2019년 이후 동남권 제조업은 장기 침체 이후 미세한 반등의 가능성을 보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시장 축소, 물동량 감소, 공급사슬 교란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2021년 이후 조선업에서의 발주량 증가, 세계적인 경기 반등에 힘입어 세계 수요 회복으로 돌아서는가 싶었지만 올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다시 공급충격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에너지 및 식량가격 폭등으로 비용인상형 인플레이션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장기 침체로 현금 흐름이 좋지 않았던 기업들은 다시 수익성 악화를 경험하고 있다.
세계시장이 정체되어도 경기도는 4~5% 성장률을 기록하고 코로나19에서도 양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경기도는 경제의 디지털화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및 관련 부품의 세계적인 공급 기지이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는 정보통신 관련 산업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다. 미래자동차 로봇틱스 항공우주 관련 장비 등 동남권의 주력 제품군에서도 디지털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들 산업의 성장조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장화에 크게 의존한다는 의미다. 모든 산업에서 제품의 전장화가 급속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권의 장기침체를 글로벌 공급사슬의 위기와 세계시장의 성장 정체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의미다. 배터리 운영체계 디스플레이 등 동남권 제조생태계에서는 생소한 요소들이 자동차 기계 조선 산업의 성장에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제조생태계가 크게 변화고 있지만 동남권은 이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 향후 경기 회복 국면으로 진입한다고 해도 전장화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경기 반등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동남권 제조업의 침체는 근본적으로는 산업구조 자체의 취약성에서 비롯되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동남권 제조업은 한국 산업화를 이끈 주된 동력이었다. 제조업 기지인 울산과 창원은 1인당 GDP에서 언제나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2010년대 이전까지 이 체제는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글로벌공급망의 구축으로 제조 비용도 낮아지고 중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시장도 꾸준히 증가했다. 동남권 제조업체들이 중국 산업에 필요한 중간재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경제 전체로든 산업이든 체계가 안정화되면 지속성을 띤다. 너무 큰 성공은 구조 변화에는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미중, 미러 간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글로벌공급사슬로부터 충격을 받고 있다. 미중, 미러 갈등이 신냉전으로 진화될 경우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동남권 제조업은 경제의 디지털화, 전장화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과거 동남권 경제의 지나친 성공은 산업 구조변동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했다. 현재의 장기 침체는 이의 결과다. 눈을 크게 뜨고 위기의 심각성을 고민할 때이다.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