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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의 생각] 당신들의 세상이 아니다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6-16 19:40:59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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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거나 위로 오르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별 변화 없는 하루하루를 무심히 보내는 것 또한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깨닫는데 60년 세월이 걸렸다. 유신에서 5공화국까지 정치적 격변기에 청년기를 보낸 터라 사회의식이 강하고, 경제성장이 본궤도에 올라 중산층이 형성되는 시기에 성인이 되었으니 풍요의 맛도, 문화적 사치도 어느 정도 안다. 게다가 국가 간 이동이 잦아진 세계화 시대에 유례없는 국위 상승의 체험도 함께 하니 내 몫이 아닌 한국의 성취 모두를 집안 경사인 양 뿌듯해한다. 지난 대선 이후 정치 뉴스를 거의 보지 않게 된 현재의 내 모습이다.

하루 두 차례 강아지 산책 시간에 이어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듣기는 한다. 김어준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변희재의 변신에 놀라움을 느끼고 왜 저렇게 인생을 낭비할까 싶은 강용석에게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뿐이다. 그네들의 인생길이니까. 아직 살날이 남은 60대 중반인데 다시 분망한 사회활동을 해야 할까. 좀 더 돈을 벌어놓아야 하는 것 아닐까.

오, 노땡큐다. 적게 먹고 적게 쓰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치밀어 오는 정치적 사회적 의견을 어떻게 꾹꾹 눌러 담아 땅에 묻는가, 그것이 과제다.

그렇다. 나는 변절했다. 아니 일탈했다. 이념을 건너뛰는 것만이 변절은 아닐 것이다. 내 세대에게는 거의 습관적이라 할 비판의식,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강박, 극우와 연대한 부패 기득권 세력의 급부상으로 거대한 국가 추락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모든 상념으로부터 놓여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왜? 주제넘으니까!

모든 세대가 각각의 이유로 죽는 소리하는 것이 우리네 풍토인데 사실 한국의 60대 이상은 충분히 누릴 만큼 누린 세대다. 고생했고 희생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점이 삶을 충만하게 누렸다는 증거다. 그 점은 현재 가난하건 부유하건 한국의 노년 모두에게 공통된다. 월남이나 중동 가서 땀 흘리고 넥타이 부대로 거리 시위에 나서 최루탄과 함께 공화정 헌법도 바꾸고 민주정부도 세워보고 다 해보지 않았는가. 부유층 권력층을 향한 상대적 박탈감과 억울함, 분노? 오 메아 쿨파…. 자기 탓도 할 줄 알아야지.

북한과 다름없던 고도성장기 30년 동안의 총동원 체제, 민주화 과정 30년 동안의 투쟁적 집단주의, 이제 그다음 시기가 도래했다고 봐야 한다. 60 넘은 나이의 경험과 지식으로 과학기술을 주축으로 움직이는 이 새로운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할 도리가 없다. 끝 모르고 진행 중인 일본의 쇠망 30년은 디지털 혁명을 이해할 수 없었던 고령의 단카이 세대가 지배력을 계속 행사해서 생겨나는 결과 아닐까.

나는 과시적 건축물 하나 짓지 않고 도시 뒷골목 곳곳을 세심하게 정비하며 스마트 시티를 구축한 박원순 시장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전임이었던 오세훈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와 디자인서울 정책이 오늘의 국제도시 서울의 면모를 갖추는 데 큰 기여를 한 점을 높이 산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역시 큰 업적이었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는 어떠할까.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과 애드리브 문답을 하고 부인 외출길에 비공식적 인물들이 동행한다는데 그거 정말로 큰 문제일까. 북한이 방사정포를 쐈는데도 대수롭지 않은 듯 반응하고, 미국의 대중 압박에 앞장서고 러시아를 향한 군사 압력에 우리나라도 한발 걸치려 들고, 이거 괜찮을까.

나는 진보적 신념을 평생의 긍지로 품고 살아온 내 또래 친구들 혹은 선배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싶다. 그냥 좀 지켜보자고. 군부독재 타도하자고 외칠 때의 그 세상이 아니라고. 무엇보다 20대, 아니 거의 30대까지 보수에 동참하는 판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생각 좀 해보자고.

아울러 태극기 둘러메고 확성기에 대고 아직도 빨갱이 운운하는 노인들에게도 호소하고 싶다. 더 이상 당신들이 염려하고 좌지우지할 세상이 아니라고. 친중·친북 세력 운운으로 적개심 불태우는 건 건강에도 좋지 않고 나라에 보탬될 일도 전혀 없다고. 보수가 사랑한 박근혜가 어째서 중국 전승절에 시진핑 옆자리에 섰겠느냐고. 다 각 시대를 헤쳐 나가는 여러 코스의 하나였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치열하게 따지고 투쟁할 일은 이제 다음 세대에게 맡겨야 된다고.

지금 국힘 쪽도 집안싸움 중이지만,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것은 민주당이 훨씬 심해 보인다. 대선 패배의 원인 평가와 이재명의 거취 문제가 핵심일 듯한데, 당연히 나에게도 의견이 자꾸만 솟구친다. 하지만 그 의견을 좀 닫아두자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체험이 있거나 김대중에게 경도되어 한 세월을 살아온 전통 지지층, 거기에 노무현의 눈물을 알고 있는 이들. 나는 호소 아닌 호소를 하고 싶다. 좀 가만히 있자고. 우상호 정도의 균형감을 가진 인물이 현역으로 이끌고 있으니 나이 든 지지층은 좀 가만히 있어 보자고. 물론 아무도 들은 척하지 않겠지. 그래도 말하고 싶다. 가령 서울의 소리 대표나 또 누구누구에게도. 지금은 바뀐 세상의 내용물을 채워야 할 때라고.

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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