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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시사탐방] 영화관을 지켜낼 수 있을까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6-23 19:25:1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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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 인류가 국경을 높이 올린 때도 있었지만, 단일한 공포와 근심을 공유하게 됐다.” 이어서 그는 “영화도 극장의 손님이 끊어지는 시대를 겪었지만 그만큼 극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며 “우리가 이 질병을 이겨낼 희망과 힘을 가진 것처럼, 우리 영화인들도 영화관을 지켜내면서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영화관을 지켜낸다’는 말은 내게 각별했는데, 무엇보다도 내가 한참 전 본지에 기고했던 칼럼(2019년 12월 26일 자 ‘영화 진흥은 영화관서 시작된다’)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후에 국내에도 팬데믹이 엄습했고, 이제 햇수로 3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방역으로 영화관이 폐쇄되다시피 한 상황을 머리에 떠올렸으리라. 그런데 팬데믹 기간에도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관의 스크린이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의 화면을 통해 이동하면서도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오버더톱(OTT) 서비스의 시리즈물도 넓은 의미의 영화라면 영화를 볼 기회 자체가 절대적으로 제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외부적 요인은 당연히 공공장소에서 즐기는 영화 관람을 제약한다. 하지만 내가 ‘영화 진흥은 영화관에서 시작된다’고 한 이유는 영화 산업 ‘내적’ 요인이 영화 관람을 제약하고 방해하는 문제를 주목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예술은 태생적으로 산업적이고 상업적이기 때문에 대중을 전제로 하며 그 대중은 구체적으로 관람객이다. 박 감독이 “영화관을 지켜내며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고 한 말은 ‘관람객을 지켜내야 영화를 지켜낸다’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이는 또한 영화산업이 관람객을 ‘양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대해야 함을 의미한다. ‘천만 영화’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관람객의 감동을 위한 영화가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방역 조치가 대폭 완화된 지금, 많은 사람이 영화관을 다시 찾고 있다. 천만 영화도 나왔다. 블록버스터 외화도 흥행 중이다.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박 감독의 영화도 곧 개봉한다.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연인을 다시 만난 듯 사람들은 영화관을 사랑하고 있다. 외부적 방해 요인의 제거는 사람들의 욕구를 순간적으로 증폭시킨다.

지금의 이런 현상이 영화의 내실을 다지는 일로 이어져야 하겠지만, 현실은 소박한 사람들의 소망을 무심히 배반할 수도 있다. 또다시 인간적 문화 향유의 본질인 다양성을 훼손하는 상영관 독과점의 문제가 대두되고, 영화를 예술적으로 관람하기보다 상업적으로 빠르게 소비하는 ‘패스트 무비’에 줄 서는 일들이 반복될지 모른다.

오늘날 영화산업에서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적이라고 해도, 영화인들의 노력으로 영화의 다양성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상영의 다양성’은 줄곧 훼손돼 왔다. 멀티플렉스가 지배하는 시대에도 지역별로 다양한 ‘독립 상영관’의 진흥이 필요하다. 그런 상영관이 박 감독의 말대로 영화를 지속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영관의 관람객들이 영화의 가치를 고양하고 영화관이라는 문화적 성채의 수호 기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질 들뢰즈는 영화감독을 “화가 건축가 또는 음악가와 비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상가들과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라는 창작품 안에는 이미 많은 사유의 씨앗이 심겨 있다. 영화에 대한 사유는 영화 상영의 속도와 시간제한을 벗어난다. 영화에 담긴 사유의 씨앗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본격적으로 발아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창시절에는 ‘영화 감상’이라는 말을 제법 썼던 것 같다. 감상(鑑賞)의 사전적 정의가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함”이라니 좀 무거운 말이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는 학생들에게 문화적 소양을 키운다는 의미에서 ‘시네마 리터러시(cinema literacy)’라는 개념도 만들어 썼지만, 이 또한 무게감이 있다. 그러나 ‘관람(觀覽)’은 좀 더 편안히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관람에는 ‘본다(見)’는 뜻이 이중적으로 들어 있다. 관(觀)은 ‘넓게 보다’는 뜻을, 람(覽)은 ‘두루 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렇게 넓게 보고, 빠짐없이 골고루 또 보면 어떻게 될까. 사유를 유발하게 된다. 영화를 ‘관람하게’ 되면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게 되면 대화하고 싶어진다. 발아하는 사유의 씨앗을 함께 나누고 싶어진다. 그래서 영화관에는 영화를 보고 난 관람객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부수 시설이 적절히 마련되어 있는 게 좋다. 팝콘은 객석에 동반하는 간식이지만, 대화의 자리에는 다과가 적격이리라. 공간 조성의 디테일 또한 영화관을 문화적으로 지켜가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김용석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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