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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대통령은 처음이라서…”

통치자 말 ‘정치적 메시지’, 약식회견 좋은 평가 받아

정제되지 않은 잇단 발언, 정부 정책 신뢰 훼손 우려…혼선 없는 진중한 언어를

  • 이은정 기자 ejlee@kookje.co.kr
  •  |   입력 : 2022-06-27 20:00:3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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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5월 21일 청와대에서 5·18행사 추진위원들에게 한 말이다. 추진위원들이 사흘전 한총련 시위대가 광주에서 대통령 차량을 막아선 데 대해 사과의 뜻을 표명하기 위해 청와대로 찾아온 자리였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국가지도자의 말로는 경솔하다”고 비난했다. 이익집단 간의 갈등을 최종 조율하며 위기상황을 돌파해야 하는 대통령의 말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201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촛불시위한 사람들,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산 쇠고기 먹던 사람들”이라며 “그분들 미국산 쇠고기 수입되면 먹지 않을까 싶다”고 말해 비난을 자초했다.

대통령의 말은 이렇듯 파장이 크고 막중하다. 국정 철학과 비전이 담긴 정치적 메시지이기 때문에 발언을 할 때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이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은 기자회견에서 정제된 모범답안 같은 발언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에 출입기자들과 약식 회견을 하는 ‘도어스테핑’을 도입해 역대 대통령과 다르다는 평을 들었다. 대통령 취임 후 자택에서 출근하는 첫날인 지난달 11일 기자들이 ‘대통령의 소감’을 물어보면서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여러 국정 현안에 답변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그대로 보여줘 박수를 받았다. 신년 기자회견을 비롯해 특별한 이벤트로 몇 차례만 국민 앞에 나와 질문을 받던 과거 대통령 관행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실(춘추관)이 별도 공간으로 있던 청와대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어스테핑 효과로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비판 여론은 잦아들었다. 사실 도어스테핑은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일상화돼 있다.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질문을 하루에도 여러 번 받는다.

호평 일색이던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놓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답변이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는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앞 보수단체들 시위와 관련한 질문에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집회의 자유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이나 갈등을 방치하는 발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통합과 배려와 거리가 먼 말을 하기도 했다. 야당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하자 “정권교체가 되면 과거 일부터 수사가 이뤄지고 좀 지나면 현 정부 일에 대해 수사가 이뤄지는 것이지,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느냐”고 반문했다. 또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해선 “과거엔 민변 출신으로 도배했다”는 말을 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발언도 잇따랐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음주운전과 관련해 “음주운전 그 자체만 가지고 이야기할 게 아니고, 가벌성·도덕성 같은 것을 따져봐야 하지 않겠나”며 옹호하듯 말 한 것이다. 배우자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제가 대통령은 처음이라… 어떻게 방법을 좀 알려주시라”고 답해 듣는 이들을 아연케 했다. 오죽하면 김종인 전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런 얘기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얘기”라고 지적했을까 싶다.

절정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 52시간제’ 개편안을 둘러싼 발언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들 앞에서 주 52시간제의 연장 근로시간 관리 방식을 현행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고 연공서열 중심인 임금체계를 직무와 성과급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다음 날 “부총리가 노동부에 민간 연구회라든가 이런 분들의 조언을 받아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해 좀 검토해보라’고 이야기한 사안”이라며 “아직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했다. 장관 발표가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면 정책을 어떻게 믿고 판단해야 하는지 국민의 실망감이 컸다.

이처럼 대통령의 거친 발언은 27일 나온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얼미터가 지난 20∼24일 닷새 동안 전국 18세 이상 2515명에게 물은 결과 윤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6.6%, ‘국정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47.7%였다. 윤 대통령 지지도에서 처음으로 긍정보다 부정이 많은 결과다. 이는 경제위기를 비롯해 당내 갈등 등 여러 이유가 작용했겠으나 주 52시간제 개편 발표 과정에서 빚어진 혼선탓이 컸다.

거침없는 윤 대통령 발언은 사이다처럼 시원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국민과 소통 강화도 중요하나 정부 내 정리가 안 된 입장이 표출되면 불필요한 갈등과 혼선을 야기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가지는 무게감을 알고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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