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상현의 끼니] 강진 묵은지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6-28 18:50:09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6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양산 통도사의 말사 ‘서운암’의 주지께서 어느 해에 재미있는 일을 하나 벌이셨다. 김장김치 한 독을 절 뒤편 대숲에 묻었다. 볕도 들지 않는 응달 아래에서 잠든 김칫독은 한참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주변 대나무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더란다. 김칫독을 꺼내야겠다 싶어 땅을 팠더니 대나무 뿌리가 얽히고설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김칫독 하나 꺼내자고 포크레인까지 동원됐다. 그렇게 해서 서운암 대숲에 잠들었던 김치는 무려 13년 만에 바깥세상과 만났다.

13년 동안 대숲에서 잠잤던 ‘서운암’의 묵은지.
맛칼럼니스트라는 직업 덕분에 그 귀한 김치를 맛볼 기회가 있었다. 13년 만에 존재를 드러낸 김치 한 보시기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발효취가 사방에 진동했다. 불쾌하지 않은, 묘하게 식욕을 자극하는 향이었다. 배추의 식감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특유의 신맛은 어지간한 샴페인 못지않게 경쾌했다. 무엇보다 미생물이 살아있는 김치가 13년이나 상하지 않고 건재하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이날 이후 묵은지의 매력에 새롭게 눈을 떴다.

‘김치부심’이 유난한 한국인은 묵은지에 대한 애정 또한 만만찮다. 보통 묵은지라 하면 오래된 김장김치를 최소 6개월 이상 숙성시킨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드는 음식에는 ‘좀 더 오래된 것’을 찾는 인간의 욕망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6개월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최소 2, 3년은 기본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버티기 위해서는 배추의 힘이 좋아야 하고 양념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김장김치와 달리 오래 숙성시키기 위한 묵은지 전용 김치를 따로 만들기도 한다.

최근 들어 묵은지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용도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묵은지는 그냥 먹기보다 식재료로 사용하거나 다른 음식과 함께 먹을 때, 그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난다. 김치찌개나 김치찜을 끓일 때 묵은지를 사용하면 별다른 양념이나 비법 없이 누구나 ‘김수미 아줌마’가 될 수 있다. 씻은 묵은지는 각종 생선회와 훌륭한 궁합을 이룬다. 생선회의 육질과 묵은지의 식감이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비린 맛을 깔끔하게 없애준다. 씻은 묵은지를 들기름에 볶으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반찬이 된다.

이런 활용도 덕분에 묵은지는 외식업의 아이템으로 특히 주목받는다. 사실 ‘묵은지’라는 말은 전라도 지역의 사투리였다. 그런데 대중이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하다 보니 뒤늦게 표준어로 인정받아 2015년부터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됐다.

묵은지의 관심과 수요를 지역의 특화산업으로 육성시키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이다. 강진군은 2020년부터 ‘강진군 묵은지 사업단’을 꾸리고 ‘강진묵은지’를 고유상표로 등록했다. 2021년에는 16개 업체가 2억56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제조업체가 35개로 늘었고 소비자의 수요 또한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강진묵은지는 100%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청각 조기 돼지고기 찹쌀죽 등 강진군 특유의 비법이 가미됐다. 강진군에 등록된 몇몇 묵은지 제조업체에서 만든 6개월~2년 된 묵은지를 먹어보니 ‘인생김치’라 할 만큼 대단한 묵은지였다. 묵은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한번 맛보시길 권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9급 지방공무원 작년보다 8000명 덜 뽑는다
  2. 2“윤산터널 앞 정체 극심한데…” 아파트 건립 강행에 주민 반발
  3. 3동래구 신청사 늘어난 공사비, 책임소재 놓고 결국 고소전
  4. 4중진 정지영 감독 “BIFF 혁신위, 첫발부터 잘못”
  5. 5[근교산&그너머] <1335> 경북 경주 마석산
  6. 6“늦었다 생각들 때 시작해봐요” 수많은 ‘정숙이’를 향한 응원
  7. 7발길마다 일본 역사와 자연…“같이 걸을까요” 새 우정도 피었다
  8. 8조종국 사퇴없이 연다는 ‘쇄신 간담회’…영화계 “불참” 압박
  9. 9모든 노동자에 차별 없는 임금인상을
  10. 10흔들리는 불펜 걱정마…이인복·심재민 ‘출격 대기’
  1. 1부산시의회, 교육청 예산 임의집행 조사 의결
  2. 2한국노총 “경사노위 참여 않겠다” 노사정 대화의 문 단절
  3. 3선관위 ‘감사원 감사 부분수용’ 고심
  4. 4권칠승 “천안함 부적절 표현 유감”
  5. 5송영길, 2차 檢 자진출두도 무산…“깡통폰 제출? 사실 아니다”
  6. 6尹 긍정·부정 모두↓...내일 총선 가정 표심은 민주에 살짝 더
  7. 7부산 청년 39세로 확대 땐 정책 수혜 20만명 는다
  8. 8[정가 백브리핑] 윤심 잡은 ‘김장 연대’가 그의 작품…국힘 ‘찐실세’ 떠오른 박성민
  9. 9尹 대통령, "고속열차 2배 늘려 전국 2시간대 생활권 확대"
  10. 10이재명 '이래경 사퇴'에 "결과에 무한책임 지는 게 대표"...거취 문제엔 '묵묵부답'
  1. 1주가지수- 2023년 6월 7일
  2. 2부산 전셋값 급락…하반기 역전세 쏟아진다
  3. 3서부산 공급과잉 지식산업센터 대규모 공실 우려
  4. 4‘센텀 금싸라기’ 신세계 부지에 ‘태양의 서커스’ 무대 설까
  5. 5국산차 가격 7월부터 낮아진다…그랜저 기준 54만 원↓
  6. 6설립허가 난 27곳 중 14곳이 ‘사하’, 지자체 승인 남발 과잉공급 부채질
  7. 7부산신발 기술 에티오피아 전수…엑스포 우군도 만든다
  8. 8북항 1단계 랜드마크 부지 재공모…“당분간 안 한다”
  9. 9부산엑스포 힘싣는 신동빈 회장…4대그룹 총수 파리행
  10. 10“부산·인천노선 병행…부정기 항공편 적극 발굴”
  1. 19급 지방공무원 작년보다 8000명 덜 뽑는다
  2. 2“윤산터널 앞 정체 극심한데…” 아파트 건립 강행에 주민 반발
  3. 3동래구 신청사 늘어난 공사비, 책임소재 놓고 결국 고소전
  4. 4탈옥해 보복한다던 서면 돌려차기男, 법무부가 특별 관리
  5. 5오늘의 날씨- 2023년 6월 8일
  6. 6부산사하라이온스클럽 김성범 신임 회장 취임
  7. 7배 못 띄워 300명 제주여행 망친 해운사, 보상 1년째 회피
  8. 8부산의료원 코로나 사투 3년 후유증…일반환자 뚝 끊겼다
  9. 9“2살 어려져 다시 20대” 기대감…“친구가 형·언니로” 혼선 우려도
  10. 10부산 대학 전임교원 강의 비율…동의대 82%, 교대 52%
  1. 1흔들리는 불펜 걱정마…이인복·심재민 ‘출격 대기’
  2. 2이탈리아 빗장 풀 열쇠는 측면…김은중호 ‘어게인 2강 IN’ 도전
  3. 3세계의 ‘인간새’ 9일 광안리서 날아오른다
  4. 4호날두 따라 사우디로 모이는 스타들
  5. 5“럭비 경기장 부지 물색 중…전국체전 준비도 매진”
  6. 6PGA·LIV 1년 만에 동업자로…승자는 LIV 선수들?
  7. 7안권수 롯데 가을야구 위해 시즌중 수술
  8. 8메시 어디로? 바르샤냐 사우디냐
  9. 9‘레전드 수비수’ 기리며…16개팀 짜장면 먹으며 열전
  10. 10클린스만호 수비라인 세대교체 성공할까
우리은행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우리는 제1부두를 맘대로 할 자격이 없다
황령산 봉수전망대에 보내는 간곡한 바람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바뀐 것이 원인이다
낙동강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기고 [전체보기]
당신이 부산에서 다치면 안 되는 이유
제28회 바다의 날을 보내며
기자수첩 [전체보기]
BIFF 사태, 단순 내부갈등으로 치부될 일인가
업자에 돈 빌려준 경찰들…전세사기 피해자 두 번 울었다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한일회담, 그들의 영구집권은 가능할까?
한국은 여기까지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
3차 세계화, 우리는 괜찮을까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학생의 날’이 있다면
“거울아, 거울아!” 그 중독의 마법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피리와 히치리키
엑스포와 나비효과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부산-경남 행정통합 추진을 바라보며
산은, 새 성장축 발전에 동참하길
도청도설 [전체보기]
전당포 찾는 2030
BTS와 김시스터즈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김해 뒷고기
명태 산업
사설 [전체보기]
지방시대위 가치는 ‘분권과 균형’ 실현서 나온다
눈 먼 돈 ‘교육교부금’ 바로잡을 근본대책 만들 때
세상읽기 [전체보기]
6·25전쟁, 의사, 그리고 부산
증거에 기반한 최저임금 인상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간호법 제정안과 지역사회 보건의료
복지 지출의 원칙과 난방비 지원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새로운 해양시대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가족에게 감사의 꽃을 드립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나에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한국경제 괜찮은가
한반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인공지능 시대, 예술가의 쓸모에 관한 단상
그림의 맛, 돈의 맛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밥의 길, 쌀의 미래
원전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세계의 대전환, 2030 부울경세계박람회
근고지영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되살리려면
대통령의 초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내게서 멀어지는 것들
새옹지마
특별기고 [전체보기]
한일관계, 기초 제대로 잡아가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어린이를 위한 음악
두 마리 토끼, 콘골트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남농산수화’의 탄생
의재 허백련의 한국적인 산수화
CEO 칼럼 [전체보기]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부산을 꿈꾸며
지역서도 유니콘 기업 나와야 한다
  • 부산항쟁 문학상 공모
  • 부산엑스포키즈 쇼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