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장애인이다. 두 사람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이웃의 남다른 보살핌 가운데 화가로서의 자질을 펼치고 변호사라는 전문업에 종사하며, 혹독한 현대사회 속에서 꿋꿋이 살아간다. 영희와 영우의 모습을 보며 가슴을 앓아보기도 하고 울분을 토하다가도 옅은 미소와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TV 속 주인공이다. 그러나 수없는 드라마 중 하나라 치부하기에는, 흔한 출연 배우라 여기고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그들의 무게감이 너무 크다.
겹겹이 포장된 드라마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장애인이 겪는 냉혹한 현실을 이해하고 여러 생각의 기회를 갖게 돼 참으로 좋았다. 영희와 영우를 만나면서, 17여 년 전 미국 시골도시에서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본다. 시내버스에 장애인 휠체어가 오르는 장면이었다. 버스에 부착된 간이승강기가 휠체어를 들어 올려 버스 한켠에 자리 잡고 다시 출발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6, 7분. 바쁜 아침 시간이었건만 묵묵히 기다리며 혹 발생할 수 있는 추락에 염려를 보내주던 탑승객들의 눈길을 잊을 수가 없다. 더 놀라웠던 것은 버스운전사가 직접 운전석을 떠나 휠체어에 안전벨트를 채워주는 것이 아닌가. 인구 15만의 소도시였는데 왜 그렇게 장애인이 많았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시내 도처에서 그들과 마주쳤다. 장애인이 특별히 모여 사는 도시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곳은 평범한 미국 시골도시들 중 한 곳이었다.
2021년 국내 등록 장애인 수가 266만여 명으로 집계된다. 전 인구의 5%를 상회한다. 숨겨진 수치도 있을 터이니 어림잡아 보면 국민의 약 십사오 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이라 할 수 있다. 통계를 보니 연간 약 6000명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고, 장애 영역이 지체에서 청각 발달 등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또한 2021년 신규 등록 장애인 중 0~9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7.4%로 10대나 20대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가 눈에 들어온다. 비전문가이기에 정확한 원인 파악이 불가능하지만, 한 가지 가능한 추측은 급속한 도시화와 고도의 문명발달로 인한 아픔이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부산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부산의 등록 장애인 비율이 6.7%이고, 전국 최상위권에 속한다. 수치상으로 부산은 장애인에 대한 정책과 배려가 절실한 도시라 여겨진다. 부산의 20세 이하 장애인 수가 약 6500명으로 개략 추산된다. 이들의 교육 현황이 궁금해졌다. 영유아에서 고등까지 특수학교가 공립 8개교, 사립 7개교 등 총 15개교다(누락이 있을 수 있다). 2022년 현재 공립 1363명, 사립 574명 등 총 1937명이 교육 대상자다. 여기에 일반학교 내 특수교육 대상자가 1716명이니 총 3653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비정규학교도 다수 있겠지만, 산술적으로 꽤 많은 숫자가 빈다. 허술한 계산법이라 오류이길 바랄 뿐이다.
영희와 영우는 장애인이지만 (예비)화가와 변호사라는 전문 능력을 갖췄다는 공통점이 있다(영희는 실제 장애인 화가다). 특수교육의 필요성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가족의 헌신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온전한 교육과 지원이 따르지 않는다면 사회 일원으로서 그들의 능동적인 삶은 매우 어려운 것이 실상이다.
또 다른 경험의 예를 든다. 부산의 특수학교를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방문 학교들 모두 고지대나 동네 구석에 있었다. 심지어 산꼭대기 부근에도 있었다. 15개교 중 12개 학교가 그런 처지였다. 2013년 이후 멈춰서 있던 부산의 특수학교 건립이 재개된다고 한다. 국립대학이 주도하고 예술이 교육 주제이니 크게 환영받을 일이다. 그런데 이 자리마저도 산림을 훼손한 고지대다. 특수학교는 왜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더더욱 문제는 난항을 겪은 사업 추진과정 중에 우리사회의 편견의 벽은 더 높아졌고 냉소자의 수 또한 더 증가한 것 같은 두려움이다. 왜 이리 힘이 들까? 정부는 선진복지국가를 주창하고 있고 특수교육 대상자는 해마다 늘어나니, 특수학교의 증설은 당연하고 더 쉬워져야 하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산중턱 열악한 특수학교들의 평지로의 이전도 마땅히 추진돼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평지에 자리한 특수학교, 맘껏 안전히 걸을 수 있는 도심의 특수학교, 큰 공원과 결합된 특수학교, 편리한 버스와 지하철과 연결된 특수학교, 어디서든 15분 안에 도착 가능한 특수학교, 단 한명의 학생을 위해 스쿨버스를 운영하는 특수학교를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인가. 생각을 바꾸어 보자. “특수학교에 내 아이들도 다닐 수 있다.” “그 학교 선생님이 내 딸과 아들일 수 있다.” 이런 마음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그런 일을 최우선으로 삼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도시가 돼야만 진정한 복지시민이자 복지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특수학교는 모두가 거부하는 님비시설이 아니라, 분명 우리가 함께 돌보기를 주저하지 않는 핌비(Please In My Back Yard)시설이 돼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