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민화(民畵) 열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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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월부상도’. 진주박물관 전시 작품. |
“한국 전통 회화의 주류는 민화이고, 이를 계승해야만 한다”는 구호 아래, 모든 한국의 현대 미술은 민화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움직임처럼 보인다. 민족주의 정신에 기댄 듯한 이러한 흐름은 새로운 바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에 부응한 가치 없는 많은 작품을 양산해내는 부작용이 뒤따르기도 한다. 이미 미술사에 굳건히 자리했던 체계를 민중적 관점으로 보려는 이러한 노력은 기존 질서를 개혁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이 이 시대에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근래에 ‘채색화’라는 제목이 들어가는 두 개의 대규모 전시가 열려 많은 미술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국립진주박물관과 이성자미술관은 전통적인 채색화 개념에 속하는 작품을 모아 ‘한국 채색화의 흐름’이라는 전시를 열어 4만여 명의 많은 관람객이 찾는 성과를 이루었다.
한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생의 찬미’라는 전시가 열려 많은 논란이 된다. 가장 문제가 된 논점은 민화를 조선시대 미술의 주류라 규정하고, 민화가 곧 채색화라는 개념 설정 때문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미술인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민화의 ‘역할’에 관심을 두고 기획했다는 이 전시는 ‘민화’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개념에 바탕을 둔다. 그는 민화를 ‘민중에 의해 태어나,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사용된 그림’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곧 지배층의 삶 중심부에 있지 못하고, 민중의 삶 속에서 숨 쉬는 민간의 미술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야나기 무네요시가 직시한 민화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시대의 주류일 수도 없고, 미술의 중심에 설 수도 없는 장르였다. 더욱이 ‘개인의 창조적 정신’을 중시하는 근대적 개념의 미술 관점에서 보면 더욱더 그렇다.
채색화라는 용어에 대한 특이한 개념 설정도 문제가 많다. 보통 한국 미술에서 채색화라 하면 남종화에 대비되는 북종화의 채색화를 의미한다. 먹과 담채를 사용하는 남종화와 달리 채색 위주로 두텁고 진하게 그리는 것이다. 화원들의 장식성이 강한 그림이나 궁중기록화가 대표적이며, 초상화나 불화 등에서도 채색화의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그림들은 주로 지배계층이 향유했다. 당시 화려한 채색 물감은 구하기도 어렵고 값이 비싸 일반인은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민중 또한 이러한 그림을 소유하고 싶어 했다.
유교적 이데아·불교적 소망·무속적 희구를 바라는 민중은 그와 유사한 그림을 가까이 두고 싶어 민간의 화가들에게 부탁했다. 이러한 작품이 바로 민화다. 이런 실용적 양식을 동시대 미술계의 주류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대적인 사고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그동안 채색화의 중심이었던 근대기 동양화가들의 작품을 배제하고, 다른 장르 작가들의 민화를 모방한 작품을 채색화라는 이름으로 중심에 둔 것은 더 기이하게 보인다. 이 전시의 의도가 수상하게 보이는 이유다.
황정수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