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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훈 칼럼] 험난한 선진외교의 길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8-04 19:05:0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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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후반기 2005년부터 임기 말까지 2년7개월 동안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으로 대통령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때 동북아 열강 지도자 주변 전문가들과 긴밀한 대화를 자주 나눴다. 중국에 후진타오 주석의 이데올로그로 화평발전 노선을 제시한 쩡삐지엔이라는 분과 그가 이사장으로 있던 ‘개혁개방논단’을 파트너로 삼아 대화를 했다. 한중 관계를 협력 관계에서 전략적 관계로 격상하는 등 성과가 없지 않았다.

그때 중국 전문가들이 한국은 선거 통해서 대통령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모든 걸 뒤집어서 믿음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 제일 걱정이라고 했다. 너무 연속성이 없이 단절이 되는지라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오고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 강대국 외교 노선을 모두 뒤집는 것으로 국정 기조를 잡는다. 동북아시대위원장으로서 공들여 구축해놓았던 중국과의 채널,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주변 그룹들과의 채널을 손바닥 뒤집듯이 붕괴시켜버렸다. 그 뒤에 베이징이나 모스크바를 가보면 우리를 얕잡아보는 태도가 역력하다.

한국이 지난해부터 국제 공인 선진국이 되고, 이제 글로벌 국가가 되겠다고 나섰다면 이런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 국격을 높이겠다면서 실행은 정반대로 가기 일쑤니 자가당착이 심하다. 국격은 외친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실행을 통해 습득하고 쌓아가는 일이다. 구멍가게 운영도 이렇게 했다가는 망하기 십상 아닌가. 자본만 축적하는 게 아니라 국가운영도 축적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도 초기부터 패턴이 다르지 않아서 우려된다. 전임 정부를 부정하고자 하는 충동이 너무 강하다.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대통령이 되었으면 자신의 어젠다를 갖고 자기 정치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생각이 순진한 모양이다.

정부가 출발하자마자 ‘종북몰이’에 나선다.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정치보복의 동기가 꿈틀댐을 감지할 수 있다. 정치보복에 성공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한풀이가 될지 모르겠다만, 국가 운영 차원에서 보면 거대한 퇴행이다. 진실과 국익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빈말로 들린다.

종북몰이를 하는 과정에서 한국이라는 국격이나 국가역량은 돌이킬 수 없이 까먹는다. 소모적 정쟁이라는 말이 틀린 데가 하나도 없다. 흔히 조선 말기 정쟁을 소모적이었다 하고, 그게 망국병이었다고 한다. 분열적이고, 자기비하적이어서 망조로 귀결되기 쉽다. 노무현 대통령은 ‘변방의 역사’라고 하고 극복을 위해 몸부림을 쳤다. 남에게 너무 의존하여 자칫 장기판 졸이 될 리스크가 높다.

기록이나 문서 등 정보를 함부로 다룬다. 대단히 후진국적 면모다. 대통령 기록물, 국정원이나 국방부의 기록들, 심지어 미국과의 공유 SI자료가 예사로 동원된다. 시스템을 다 허문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이나 탈북 어민 북송사건에서 보면, 국가 운영의 자료나 정보를 대하는 인식과 태도가 후진국에서 정파들이 갈라져 싸움을 일삼는 그런 수준이다. 당사자인 미국이나 여타 주변국들이 얕잡아 보기에 맞춤한 행태다. 부끄러운 수준이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을 보면서 2004년 이라크전 때 우리 국민 김선일 씨가 이슬람 테러단체에 인질이 되고 결국 피살되는 사건이 떠올랐다. 3년 뒤엔가 분당 샘물교회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인질이 되는 사건도 겹쳐졌다. 국가의 국민 보호책임은 어디까지이며,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의무는 어떤가라는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례가 일본 국민에게도 있었고, 독일의 사례도 있었다. 우리 경우는 이들이 어쨌건 피해자이기 때문에 국가에 책임을 요구하는데 급급했다. 자신들의 일탈행위는 오간데 없다. 가족과 교회가 나서서 국정 마비 수준의 분란을 일으키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댔다.

언론도 같이 춤을 췄다. 국민의 생명이 위태로운데 국가가 뭐 하고 있느냐고 정부를 마구잡이로 몰아 댔다. 언론이 냉정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 없다. 싫어하는 정부니까 호재로 삼아 공격하고 비판하는데 열을 올렸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자세를 보였다. 상당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선진국에 걸맞은 외교를 펼치는데 있어 언론이 크게 미흡하다.

선진 강국들은 어떤가. 일본은 피해자 부모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자기 자식이 국가에 큰 부담을 지워 죄송하다고 울먹이면서 사과를 했다. 독일은 인질범과는 협상이 없다는 단호한 원칙으로 일관했다. 우리는 샘물교회 선교단의 경우 결국 인질범과 협상했다. 국가 자원이 총동원되었음은 두말할 나위없다. 몸값도 지불하지 않았을까. 서해 피격 공무원을 순국과 유공자 처리한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은데 점입가경이다.

이런 수준으로는 선진국은 고사하고 글로벌 국가에 걸맞은 외교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그새 네 번의 정부가 교체되는 변화가 있었지만 북풍으로 대선을 치르고 종북몰이로 국가를 운영하는 데서 의미 있는 진전은 없다. 그 결과 한국의 외교안보 역량도 진일보하지 못한다. 선진외교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이수훈 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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