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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청년의 소리] 당신의 청자가 되어

  • 김미양 작가·‘입가에 어둠이 새겨질 때’ 저자
  •  |   입력 : 2022-08-07 19:08:5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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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여기 놀러 오세요. 옛날 사진 가져오시면 참기름으로 바꿔드려요!”

마을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공간에 웬일로 청년 무리가 등장해 전단지를 돌리고 호객행위를 한다. 낯선 이를 경계하는 주민들도 있지만, 참기름의 유혹이 워낙 강력해서인지 대부분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공간에 들어선다. 청년들이 요구하는 것은 ‘옛날 사진’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과거의 기억과 이야기를 생필품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지난 7월 18일, 영도 신선동 도래샘 사랑방에서 열린 ‘기억전당포’의 풍경이다.

영도문화도시센터는 올해 6월부터 온라인 ‘기억전당포’ 사업을 시작했다. 2000년대 이전의 영도 주민 생활사가 담긴 사진을 주로 수집한다. 영도 곳곳에 얽힌 개인의 장소기억을 수집해 공통의 기억으로 확장해나가는 아카이빙 프로젝트다. 7월에는 오프라인 프로젝트도 병행했다. 신선동 동삼동 남항동 영선동 청학동 봉래동마다 이틀씩 거점공간을 지정해 기억전당포를 열었다. 나는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록담당으로 4일을 참여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생활사 아카이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취하던 서구 암남동 일대에 재개발이 시작된 것이 첫 번째 계기였다. 외지인 입장이지만, 토박이 주민들이 떠나고 주택이 헐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씁쓸함을 느꼈다. 그리고 지난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나보내며 미처 기록해두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니 영도에 오래 거주하신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번 사업은 내게 좋은 기회였다.

아흔이 넘은 한 어르신은 앨범을 통째로 가져오셨다. 수백 장에 달하는 사진 중에서 영도와 영도가 아닌 것을 구분해내는 것도 일이었지만, 더 어려운 것은 인터뷰 시간이 한정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어르신은 지난 세월의 기억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난감했다. 어르신의 삶을 단 10분짜리로 축약할 수 없을뿐더러,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들려주시는 말씀들 속에서 필요한 이야기와 불필요한 이야기를 선별해 잘라내기가 죄송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자가 많아 허둥지둥 인터뷰를 끝내고 말았다.

반대로 입을 꾹 닫아버리는 어르신도 계셨다. 사진 한 장을 놓고 어르신과 마주 앉으면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언제 찍은 사진인지, 사진 속 인물은 누구인지, 이 동네가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 당시에 기억나는 다른 추억들은 없으신지.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살아온 시간이 곧 버팀의 시간이고 인고의 세월이었던지라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이 된다. “나 안 할란다. 괜히 왔다”하시며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어르신 곁에서 조용히 손을 잡아드리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걸 뭣에 쓸라고?” 이건 4일간 가장 자주 받은 질문이다. 사적인 정보들이 함부로 활용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대체 이게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는 순수한 물음이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어르신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어르신이 살아오신 이야기가 소중해요”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입을 떼기는 쉽지 않다.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말들이 내겐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에 담긴 기억이, 사진으로 다 담아내지 못한 프레임 밖의 수많은 기억이, 그저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202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도 의미가 있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나의 짧은 활동은 끝이 났지만,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가 남은 셈이다. 어르신들과 친밀한 유대를 쌓는 법을 배우려면, 한 사람의 목소리가 휘발되기 전에 포착해 종이 위의 문장으로 붙잡아두는 법을 익히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기록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정답을 찾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일단은 이렇게 답을 해본다. 기록이란, 당장의 의미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 하여도 묵묵히 세상에 흔적을 남겨두는 일이라고. 더 늦기 전에 당신의 청자가 되어, 고단했던 당신 생의 목격자이자 한 명의 지지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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