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잡놈에 이르는 길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8-07 20:01:53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아조 천생 잡놈일세.” 상쇠의 구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내달리는 장단은 맺는 법을 잊은 듯 영원할 것만 같았다. 구경꾼들의 추임새 흥도 격해졌는데, 철모르는 어린애였던 난 헷갈리고만 있었다. 그때껏 힐난의 모양을 한 감탄이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기 때문.

불혹이 어른거리는 세월에 도착해 헤적이는 스무 살 여름날은 맨송맨송한 구석이 없다. 시간이 마련한 굴절은 차치하고, 가가호호 들이켰던 농주 때문에 성한 기억을 솎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 같지 않다. 그럼에도 그날, 떠들썩한 잔치의 뒷간에서 몰래 올려내던 순간과 주절주절 시를 외며 입가를 닦던 장면만은 선연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삐뚤어진 코볼을 움킨 채, 입에서 굴리던 것은 까까머리 중학생 때 국어시간에 만난 시였다. 열흘간의 농활을 겪었기로서니 뭣도 모르는 건 문학소년 시절이나 매일반일 테지만, 당시엔 한두 해 위 선배들이 일러주는 세상사로 고양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모르긴 해도 잡놈, 그거 나도 되고 싶었다.

돌이 빠질 때까진 무조건 많이 움직이라 했다. 그간 신장과 방광, 좌우를 망라하고 결석이 생긴 게 네 번째였지만,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끄덕였다. 읽고 쓰는 벌이의 고단함을 핑계로 몸속에서 돌을 만들도록 움직거리질 않은 걸 누굴 탓하랴. 무력하게 휴대폰으로 결석 사진을 찾아보다 지구 밖을 떠도는 혜성과 닮았다 생각했다. 지독하게 아프게 생겼다. 의사는 무통주사가 얼마간 벌어줄 테니 24시간 쇄석술이 가능한 병원을 섭외해보자 했다.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거짓말 같이 통증이 사라졌다. 돌이 이동을 한 모양인지, 주사의 효력인지 진땀으로 젖은 환자복과 시트만 아니었다면 감쪽같았다. 응급실 천장보드의 무늬를 끔벅이고 있으려니 실려 오는 동안 구급대원의 팔뚝에 의지해 몸을 뒤틀었던 게 떠올랐다. 아랫입술을 잘끈 물었다.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옷이…” 하는데, 얼른 간호사가 제지했다. 얌전히 천장만 응시하는 사이, 갖은 사연으로 신음하는 이들이 하나둘 주위를 채웠다. ‘어서 비워주어야 할 텐데…’ 낯부끄러움이 까맣게 몰려들 즈음, 초로의 이송요원이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 그가 익숙하게 침상 난간을 내리고, 내가 몸을 묻기 쉽게 휠체어의 발판까지 젖혔다. 등받이에 폭 안겨 어디론가 옮기어지는 동안, 바퀴를 굴리는 검버섯 덮은 손으로 자꾸만 눈길이 미끄러졌다. CT 촬영 후 다시 휠체어를 앞세운 그에게 좀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날 입때껏 그만한 용기를 낸 적도 없었지만, 애초에 하려던 귓속말인 ‘저 걸어갈 수 있어요’와는 완전히 엉뚱한 말만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는 “아픈 데에 젊은이 늙은이가 따로 있나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돌을 깨려 했던 그날 밤, 무통 주사가 벌어줄 거란 시간이 끝나자 귀신같이 통증이 일었다. 괜찮다는 말을 두 번이나 듣던 때의 나는 발이 땅에 닿질 않는 높은 곳에 있었다. 말은 조심스러웠고, 비록 땀에 젖었으나 가르마는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통증은 나를 속절없이 낮은 자리로 끌고 갔다.

“파리바게트!” “장충동돼지족발!” 전방의 빨간 신호등에 욕을 내뱉다 이마저도 다채롭지 못하자 창밖으로 뵈는 글자란 글자를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안전벨트를 쥐어짜는 내게 더 이상의 엄숙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목이 갈라지고 기진한 채로 반야심경을 중얼거리지만, 그것도 ‘관자재보살’까지밖에 생각나질 않았다. 존엄이니 체면이니 하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죄 태곳적에나 있던 말 같다. 그 순간, 스무 살 여름날에 외던 시가 왜 떠올랐는지.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안다/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신경림의 ‘농무’). 모르긴 해도 잡놈의 말을 잊고, 삶을 잊어온 내게 닥친 벌임을 참으로 ‘가리느까’ 알아차린 까닭이 아닐까.

정재운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뉴스 분석] 서부산 ‘쇼핑몰 삼각편대(롯데·신세계·현대百)’ 시너지…유통상권 팽창 예고
  2. 2일본 신칸센 멈추고 주민 대피령…삿포로·아오모리 등 혼비백산
  3. 3부산대 여자기숙사 드론 알고 보니 외주업체 야간 촬영
  4. 4“원전 밀집 부울경, 전력 다소비 수도권…전기료 차등 마땅”
  5. 5잦은 흥망성쇠, 척박한 생존환경…음모·술수가 판쳤다
  6. 6'3金 낚시론''이게 뭡니까' 김동길 교수 별세
  7. 7영화의 바다 별들 다시 뜬다…BIFF, 10일간의 항해 시작
  8. 8“전력 열세에도 적 심장부 돌진…충무공 정신이 난제 풀 열쇠”
  9. 9한미 북 추가 도발 억제용 미사일 발사...낙탄에 주민 '화들짝'
  10. 10‘역대 최대’ 부산미술제 14일 개막…직거래 아트페어도
  1. 1“원전 밀집 부울경, 전력 다소비 수도권…전기료 차등 마땅”
  2. 2한미 북 추가 도발 억제용 미사일 발사...낙탄에 주민 '화들짝'
  3. 3최인호 "HUG 권형택 사장 사의, 국토부 압박 탓"
  4. 4국감 첫날 파행 자정 넘겨 마쳐...둘째날 '부자감세' 논란 예고
  5. 5외신 “북한 풍계리 주변 활동 증가”
  6. 6민주당 "여성가족부 폐지 땐 여성 타깃 범죄 취약" 우려
  7. 7[뉴스 분석] “지금 임금으론 생활 어렵다” vs “매일 출근도 아니면서…”
  8. 8메가시티 합의 못 했지만, 부울경 초광역 사업 첫삽은 뜬다
  9. 9부산시의회, 박형준 핵심 공약 '영어상용도시' 사업 제동
  10. 10尹 대통령 "北 4000㎞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결연한 대응 직면"
  1. 1[뉴스 분석] 서부산 ‘쇼핑몰 삼각편대(롯데·신세계·현대百)’ 시너지…유통상권 팽창 예고
  2. 28년째 이용객 1위… 에어부산 김해공항 활성화 일등공신
  3. 35년 간 부산지역 중고차 관련 위법 행위 412건… 전국 2위
  4. 4"애플 일방적 앱가격 인상에 韓이용자 3500억 추가 부담"
  5. 5잡히지 않는 부산 '생활물가'…무 119%·돼지갈비 14%↑
  6. 6농식품부 “김장철 배추대란은 없을 것으로 본다”
  7. 7주가지수- 2022년 10월 4일
  8. 8올해 4분기 수출전망 더 나빠졌다…"환율 변동성 확대"
  9. 9월급쟁이 소득세 9% 늘 때 기업 법인세 4% 증가 그쳐
  10. 10메타버스에서 르노車 꾸미면 NFT가 보상으로
  1. 1부산대 여자기숙사 드론 알고 보니 외주업체 야간 촬영
  2. 2'3金 낚시론''이게 뭡니까' 김동길 교수 별세
  3. 3"학교용지부담금 분양 시점 학생수 고려해야"
  4. 4김해시 의생명산업 중심 도시로
  5. 5부울경 5~20㎜ 강우...낮 바람 불어 쌀쌀
  6. 6‘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순천 할머니 부산 전시
  7. 7코로나 위중증 58일 만에 최저…해외유입도 감소세 뚜렷
  8. 8“해외동포 등 전국체전 참가선수 불편없게 도울 것”
  9. 9오늘의 날씨- 2022년 10월 5일
  10. 10울산시교육청 내년 중등교사 등 임용후보자 채용계획 공고
  1. 1거포 가뭄 한국, 홈런 펑펑 미·일 부럽기만 하네
  2. 2권순우, 세계 23위 꺾고 일본오픈 16강
  3. 3필라델피아 막차 합류…MLB 가을야구 12개팀 확정
  4. 4처량한 벤치 신세 호날두, 내년 1월엔 맨유 떠나나
  5. 5김수지 ‘3주 연속 우승’ 도전…상금 1위까지 두 토끼 잡는다
  6. 6이대호 고군분투했지만…가을의 기적은 없었다
  7. 7손흥민, UCL 첫골 쏘고 토트넘 조 1위 이끈다
  8. 8‘또 해트트릭’ EPL 홀린 괴물 홀란
  9. 9국내 넘어 세계무대서 맹활약, 한국 에어로빅계 차세대 스타
  10. 10김하성, MLB 첫 가을야구 진출 축포 ‘쾅’
우리은행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단체장 권한 집중 획일적 구조…행정전문관 등 대안 고민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복지환경위원회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이영희와 우영우, 그리고 우리들
제1부두서 부산비엔날레가 열린다고?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표류하는 가덕신공항
기고 [전체보기]
효율성과 안전성이 입증된 세계적 흐름
바이오융합 방위산업으로 국가산업 구조 개혁
기명칼럼 [전체보기]
다시, 시민의날 곱씹는 이순신 정신
네옴시티와 행복도시
기자수첩 [전체보기]
표현도 가지각색, 부산 팬들의 뜨거운 롯데 사랑
김해시 현안, 전 시장 일이라도 수습을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민주당, 가망 있을까?
당신들의 세상이 아니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출산율 0.73 부산에 수의대를 허하라
4차 산업혁명과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민심, 그 숨은그림찾기의 비밀
영화관을 지켜낼 수 있을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새로운 음악생태계 모색
유형과 무형의 문화유산이 만날 때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부산 조정대상지역 이번엔 해제될까
부산 역사 담은 롯데타워 되길
도청도설 [전체보기]
가을축제
등 번호 10번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영암 어란
기장군 말미잘탕
사설 [전체보기]
정부 마중물 예산서 확인한 메가시티 불씨 중요성
북한 미사일은 본격적인 전략 도발, 선 넘지 말아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인구가 많아야 부자국가다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험난한 선진외교의 길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노아 방주의 실천적 교훈
에너지 가치사슬의 완성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한국, 세계의 중심국이 되다
푸틴, 리더의 함정에 빠지다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정치인의 언어
우리는 농업을 지킬 수 있을까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대한민국의 미래, 부울경 메가시티
새 대통령에 거는 기대, 두잉(Do-ing)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난국 탈출, 대통령의 공감과 감응부터
민주당, ‘닮은꼴’ 영국 노동당에 배울 점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외로워
인 비노 베리타스, 그리스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국민 언니’의 원조 강수연 배우를 떠나보내며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베토벤의 머리카락
‘보리밭 사잇길로’ 윤용하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신명연의 ‘양귀비꽃’
민화에 대한 수상한 시선
  • 2022골프대회
  • 맘 편한 부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