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오징어 게임’은 자영업자들을 고뇌와 울분의 수렁에 빠뜨렸다. 상금 456억 원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 건 생존 게임에 뛰어든 이정재(성기훈 역)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듯 느꼈다. 그는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한 뒤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하고 사채에 시달리다 게임을 선택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벼랑 끝에 계신 분들입니다.” 방송을 접한 자영업자들은 “오징어 게임보다 자신의 현실이 더 지옥 같은 생존 게임”이라며 공감 반 분노 반의 심정을 토했다.
치킨 가게에 때아닌 화마가 들이닥쳤다. 홈플러스가 불 지핀 치킨 전쟁 때문이다. 말복인 지난 8월 15일, 마트 광고 전단지엔 ‘단 하루만 이 가격’이란 꽤 호기로운 행사 내용이 실렸다. 치킨 한 마리 행사가 5990원. 전단지 우측에 실린 닭볶음탕용 생닭 6990원보다 1000원이나 저렴하다. 생닭보다 치킨의 가격이 더 싼 셈이니 요지경이랄까. 매장에는 반짝 치킨 한정판 행사로 인해 구매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으니 두어 시간 정도 기다리는 건 문제가 아닌 듯하다. 오죽하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되팔이하는 사례까지 등장했을까. 대형 유통업체들은 반값 치킨, 반값 피자값으로 시끌벅적하다.
치킨 가게 주인들은 망연자실했다. 장사가 힘든 것은 견뎠지만 폭리를 취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엔 부아가 치밀었다. 종일 뜨거운 기름 앞에서 닭을 튀겨도 손에 쥐는 건 몇 푼 되지 않아 폐업을 고민하며 배달 플랫폼 일자리를 찾는 중이라서 더 속상하다.
업계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닭 한 마리 공급가는 6000원 정도로 튀김유·튀김가루·치킨 무·양념 등과 포장비를 합치면 원재료비는 9000원~1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임차료·인건비·광고비 등의 점포 운영비와 배달 플랫폼 수수료, 점주 부담의 배달비까지 합치면 치킨 원가는 1만8000원 정도다. 부가세 포함한 2만 원 치킨에 치킨집 주인이 쥐는 돈은 고작 1000원 전후다.
이에 비해 지난해 프랜차이즈 치킨 빅3(교촌·bhc·BBQ)는 코로나 배달 특수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간 꼴이다. 그런데도 국제 곡물 등 원·부재료와 국내외 물류비 인건비 급등을 이유로 일제히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본 메뉴에 사이드 메뉴와 음료, 배달비를 포함하면 치킨 한 마리에 3만 원을 훌쩍 넘긴다. 치솟는 치킨값을 향한 소비자 불만이 급격히 고조되었다. 여기에 BBQ 회장의 ‘치킨값 3만 원’ 주장이 소비자들의 반감을 크게 샀다.
12년 전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이며 시판 일주일 만에 사라진 롯데마트 ‘통큰치킨’ 사태와 대조적이다. 당시 프랜차이즈 치킨값 1만2000원의 반값에도 미치지 않는 5000원이었으니 소비자들은 마트 개점과 동시에 긴 줄을 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시대 가치였으니 역풍이 만만치 않았다. ‘영세 골목상권 말살’, ‘대기업 횡포’란 사회적 분위기에 “상도의마저 저버렸다”며 정치권이 가세했다. 청와대의 고위직 인사가 ‘밑지고 파는 미끼 상품’이라며 힐책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의 십자포화에 부담을 느낀 업체가 백기를 들며 일단락됐다.
정치·사회적 여건이 변했으니 같은 반값 치킨 사태인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가? 소비자 선택권이 줄곧 요구되는 사이 대형유통업체는 이커머스 시장까지 진출해 전방위적인 시장 지배력을 갖췄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대형마트 의무휴무제 폐지, 내년도 지역화폐 예산 전액삭감 등을 시험대에 올렸다. 대통령실은 대형마트 의무휴무제 폐지를 어뷰징(중복투표)이 의심된다는 석연찮은 이유를 들어 국정과제 반영을 취소한다고 했지만 자영업자의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우리 사회의 더 큰 불안과 엄청난 비용을 일으킬 시작점이다. 중요한 건 벼랑 끝 자영업자를 ‘오징어 게임’처럼 생존 게임으로 내몰기보다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영세 상권 보호라는 가치는 시장 만능주의로부터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보듬어야 하는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