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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영암 어란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9-04 18:56:31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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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의지해 사는 지역에서 생선의 알을 먹는 것은 그리 낯선 식문화가 아니다. 알은 그 자체로 생명의 근원인 까닭에 영양이 풍부하고 맛도 진하다. 생선은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억 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생선의 알을 먹는 것은 ‘다산’과 ‘다복’을 염원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어란을 말리고 있는 영암어란 최태근 명장.
인간이 먹는 다양한 생선의 알 가운데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히 귀하게 여기는 것은 숭어알이다. 알집이 크고 쌍으로 되어 있으며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숭어알 말린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어란(魚卵)’이라 하고, 지중해에서는 ‘보타르가(Bottarga)’, 일본에서는 ‘카라스미(唐墨), 대만에서는 ‘우위즈(烏魚子)’라고 한다. 말린 알을 그냥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지중해의 보타르가 같은 경우는 갈아서 파스타에 뿌려 먹기도 하고, 레몬즙을 곁들여 디저트로 즐기기도 한다. 어란을 유난히 귀하게 여기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인들은 카라스미를 최고의 술안주로 여긴다. 1㎜ 정도로 얇게 쓴 어란을 앞니로 조금씩 떼먹거나 입천장에 붙여 혀로 녹여가며 먹는다. 주접스러워 보이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치아 사이에 낀 것조차 반갑게 여길 정도로 감칠맛이 농축돼 있다.

하지만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는 일본의 카라스미도 한국의 어란을 따라오지 못한다. 유럽 일본 대만보다 한국의 어란이 독보적인 이유는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낚시로 잡은 숭어만 사용하고, 그중에서도 크고 이쁜 알만 고르고, 청주에 담가 살균하고, 조선간장에 담가 맛을 들이고, 말리는 내내 참기름을 먹인다. 사람의 손길이 족히 수천 번은 닿아야 완성되는 맛이다. 조선간장과 참기름이 서서히 속까지 밴 어란은 특유의 색을 갖는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숭어의 황금빛 알은 햇볕에 말리면 빛깔이 호박 같고 맛은 진미’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어란이 가장 유명한 고장은 전라남도 영암군이다. 영암방조제가 생기기 전, 한반도 최고라 불리던 영암갯벌에는 봄이 되면 1m가 넘는 가숭어가 우글우글했다. 알이 커야 좋은 어란이 만들어지는데 참숭어보다 가숭어가 알이 컸고 맛도 뛰어났다. 영암어란은 조선시대 궁중과 한양 권세가들이 최고로 꼽는 진미였다. 400~500g 정도 되는 어란 한 편(쌍)의 가격은 쌀 한 섬(144㎏)으로 정찰가가 정해져 있을 정도였다.

최근 방송 촬영차 영암어란 명장인 최태근 선생댁을 찾았다. 최태근 명장은 집안 대대로 이어진 어란 제조법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어란 제조에 쓰이는 청주 조선간장 참기름을 직접 만들어서 쓸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명장께서는 100g에 10만 원이 넘는 어란을 아낌없이 썰어주셨다. 평소 술안주로나 몇 점 먹던 어란을 밥반찬으로는 처음 먹었다. 어란을 김에 싸서 먹는다거나 갈아서 밥과 비벼 먹는다거나 하는 호사를 마음껏 누렸다. 어란을 듬뿍 올린 어란파스타도 일품이었다. 단 하루만 산다면, 이런 하루를 살고 싶다고 느낀 하루였다.

조선시대에는 주안상에 올라온 어란의 양을 보고 주인장이 손님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가늠했다고 한다. 올 추석 선물로 혹시라도 어란을 받은 독자가 계신다면, 상대가 당신은 정말 귀한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믿으셔도 좋을 것 같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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