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거지로 변장했다는 바그다드의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절대권력 주위로 모여드는 아첨꾼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그는 이런 위장술을 쓰지 않고서는 세상의 진실을 알아낼 수 없었다. 하룬은 셰에라자드를 처형하려 했으나 결국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는 바로 그 ‘천일야화’로 유명한 군주다.”
저명한 보수주의 정치학자인 케네스 미노그는 자신의 정치학 입문서를 이렇게 시작했다. 종교와 정치의 권력을 모두 가졌던 칼리프 같이 막강한 전제군주도 백성의 소리를 듣고 백성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 비슷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적지 않다.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것이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요순시대가 태평성대였던 것도 황제가 백성의 삶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소리를 듣고 그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우추요(詢于芻蕘), 곧 ‘꼴 베고 나무하는 백성에게 물어’ 그들이 바라는 대로 정치를 하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추석 민심을 살펴야 한다며, 이때만이라도 매우 성실해지고 분주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오래된 금언을 되새기기도 한다.
민심과 천심에 상응하는 서양의 금언도 있다. 라틴어로 ‘복스 포풀리, 복스 데이(Vox populi, vox Dei)’, 곧 ‘인민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라는 말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법과 제도가 잘 갖추어진 나라에서 인민은 통치자보다 “더 분별 있고, 더 믿을 만하며, 더 나은 판단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인민의 목소리를 신의 목소리에 비유하는 것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나아가 “인민의 견해는 앞날을 예지하는 경이로운 효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렇다면 인민의 소리를 듣고 민심을 헤아리는 것은 모든 정치 행위의 근간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인민의 마음은 ‘숨겨져’ 있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잠재해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민심을 알아가는 것은 ‘숨은그림찾기’에 비유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룬의 일화를 다시 상기해야 한다. 그는 잠행을 했다. 잠행하는 위정자가 잠재하는 민심을 잘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한 임금은 잠행을 하며 그들을 실질적으로 보살폈다. 이런 점에서 정치인들이 전통 시장에 가고 잠시 봉사활동을 하며 그것을 방송하는 행위는 진즉 그만두었어야 하는 ‘행사’들이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대통령이 종종 농민들과 함께 모심고 추수하며 막걸리 잔을 나누었다. 지금 우리 민도가 그렇게 낮지 않다.
이제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 무슨 소리를 듣고 어떤 마음을 헤아려야 할지 주의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민생을 챙겨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하지만 민생이란 말은 이미 너무 추상적인 언어가 되어 버렸다. 민생이 뭔가. 정치인들은 아무런 구체성 없이 ‘먹고 사는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배부른 백성이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건, 그야말로 옛날 말이다.
민심은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배고픈 자라고 빵만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민초는 ‘먹고 사는 것’ 이상을 원한다. 모욕적인 빵은 거부한다. 힘센 자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들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존중받을 권리를 요구한다. 당연히 무시당하면 분노한다. 전시 효과로 넘어가려는 각종 정치 행위들을 아주 싫어한다. 그들을 어설프게 위로하려는 위정자의 말과 행동은 항상 역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민심 탐방을 하면서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듣는다면, 그 정부는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모든 정치 행위에 전제되는 인간적이고 인문적 차원의 주의사항이다.
순수 정치적 차원에서도 주의사항이 있다. 케네스 미노그는 “정치를 느슨하게나마 자유 및 민주주의와 동일시한다면” 전제군주는 정치에 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을 인정한다는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룬 같은 절대권력자는 처형하려 했던 사람을 아내로 삼았듯이 그 자신의 결정이 곧바로 공적 영향력을 갖는다. 사적인 것이 구분 없이 동시에 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위정자의 공사 구분을 철저히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구분이 흐릿한 위정자는 여전히 존재해왔다. 자유민주정에서 공사의 경계 구분이 흐릿한 위정자는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없다. 위정자가 제왕적이고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민심도 그 경계를 유심히 주시하고 있다.
마지막 주의사항, 숨은그림찾기의 특징은 무엇인가? 찾고자 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한 구상을 갖고 숨은 것을 드러나게 하는 작업이다. 이는 정치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책적 구상이 구체적으로 있어야 숨은 민심을 잘 찾아낼 수 있다. 폭넓게 말해, 분명한 국가 비전이 있어야 잠재하고 있는 민심을 그것에 담아낼 수 있다.
김용석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