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독일 정치가 비스마르크는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고 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뭐든지 직접 경험해야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역사를 통해 다른 사람이 한 경험을 듣거나 보고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정치·사회 분야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일본은 유럽 중심의 조선산업을 아시아로 옮겨온 선두 국가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용접공법 블록공법 등 조선산업의 생산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조선산업 주도권을 잡아나가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 50여 년간 수주량 건조량 등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이후 일본 조선산업은 점유율이 계속 하락해 시장의 주도권을 한국과 중국에 내줬으며, 2010년대 이후 한국과 중국의 양강 경쟁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러한 일본 조선산업의 추락은 일본 정부와 조선업계가 1980년대 말 추진한 구조조정의 결과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조선소 간 합병과 대형 독(Dock) 폐쇄가 이뤄졌으며, 무엇보다도 대대적인 인적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특히 일본은 원가의 획기적 절감을 위해 벌크선을 중심으로 선박설계 표준화에 박차를 가해 일부 선박을 표준화했고, 일본의 이러한 표준 선박 전략은 1990년대까지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여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마저 구조조정을 함으로써 새로운 선종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했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 급격하게 팽창한 신조선 시장에서 선주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대응할 인력이 없어 한국 기술력에 뒤처지게 됐다.
조선산업이 위축되자 일본의 대학에서는 조선공학전공 학과를 폐쇄하는 등 신규 인력 공급도 축소했다. 이로 인해 설계 및 엔지니어링 기술 인력 공급이 부족해 우리나라 설계용역 회사에 발주하는 등 자체 기술력 확보에도 한계를 가지게 됐다. 일본 조선업은 한국과 중국의 협공으로 계속 축소돼 숙련된 기능공과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떠나고, 그 결과 선박의 품질 및 기술력 저하로 일본 조선산업 기반 자체가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1990년대 일본의 구조조정과는 반대로 독을 확장했으며, 육상건조공법 메가블록공법 등 생산 혁신을 이루는 한편 대학의 인재 공급과 LNG선박 및 해양플랜트 등 다양한 고부가가치 선박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2000년대 이후 조선산업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잘 나가던 국내 조선산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산업의 불황으로 연결됐고, 국내 조선업계는 위기를 모면하고자 대대적인 인적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선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이 2015년 약 20만3000여 명에서 2022년 약 9만2000여 명으로 50% 이상 대폭 감축됐다. 생산현장 기능직뿐만 아니라 차세대 선박기술 개발에 힘써야 할 설계 및 연구개발 기술 인력도 구조조정됐다. 구조조정 된 인력은 건설업계 등 타 산업으로 이직하거나 경쟁 해외 조선소로 취업하는 등 현장을 떠났다.
불황을 걷던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최근 LNG선박 친환경선박 자율운항선박 스마트선박 등 선박 수주가 많이 증가해 조선산업 부활의 청신호가 켜졌다. ‘배 들어왔을 때 노 저어라!’ 조선산업에 대한 어느 신문의 머리기사였다. 그러나 조선소에서는 노를 저을 인력이 없다고 한다. 극심한 불황기 당시 조선소를 떠난 숙련 인력이 다시 호황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을 채울 일감은 있는데 배를 건조할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적절한 인력 육성 정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숙련 인력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세계 조선산업 시장에서 1위 자리를 한국에 넘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일본 조선산업의 실패를 거울삼아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미래를 살펴봤으면 한다.
심상목 부경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전공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