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가현 가라쓰시에는 무려 2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와시마두부점’이 있다. 이 가게의 9대째인 가와시마 요시마사 대표는 선대의 유산을 뛰어넘는 두부를 만들기 위해 직접 콩을 재배하며 두부의 본질을 탐구했다.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1983년 기존 두부보다 월등히 뛰어난 소쿠리두부를 개발했다. 탄력 부드러움 농후함이라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이 두부는 1만2000여 개의 제조공장이 있는 일본에서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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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해산물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 |
요시마사 대표가 이런 두부를 만들게 된 배경은 그가 대단한 와인 애호가이기 때문이다. 두부공장의 재산인 콩 저장창고 옆에 와인 저장창고를 둘 정도로 와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는 어차피 단백질이 응고된 식품인데 ‘모차렐라치즈처럼 와인과 잘 어울리는 두부는 불가능할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소쿠리두부는 올리브오일을 듬뿍 뿌리고 약간의 소금을 쳐서 화이트와인과 함께 먹으면 그 진가를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경남 통영시에서 요시마사 대표의 소쿠리두부에 비견될만한 막걸리를 만났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가 그 주인공. 건축가 박준우는 2011년 서울특별시건축상을 받고 중국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성공한 건축가였다. 그러던 그가 뒤늦게 낳은 외동딸이 자연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남 통영시 산양읍 야소골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야소주반’이라는 예약제 레스토랑을 열었다. 야소주반은 사시사철 변화무쌍한 통영의 해산물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곳으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런데 박준우 대표에게는 한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흔히들 해산물에는 화이트와인이나 스파클링와인이 어울린다고 한다. 하지만 섬세한 그의 미각에 통영 해산물의 파트너로서는 부족했다. 취미로 빚던 막걸리를 본격적으로 빚기로 한다. 흥미로운 것은 접근방식. 건축가답게 자신이 추구하는 막걸리의 구조를 세밀하게 설계했다. 그리고 기온과 습도에 따라 시멘트 모래 물의 구성비가 달라지는 콘크리트 배합 방식을 막걸리에 적용했다. 쌀 누룩 물로만 빚는 막걸리와 콘크리트를 같은 원리로 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무려 130번의 다른 방식으로 막걸리를 빚었다. 결국 32번째 배합비가 자신이 원하는 막걸리에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32번째 공식은 그가 지향하는 막걸리의 출발일뿐 끝이 아니었다. 이를 토대로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결국 자신의 애초에 설계했던 막걸리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막걸리에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라는 이름을 자신 있게 붙였다. 탁월한 스토리텔링이다.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는 통영의 해산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통영의 상징인 생굴과는 세상 그 어떤 술보다 잘 어울린다. 프랑스의 고급 샴페인이나 일본 최고 수준의 스파클링 사케와 당당히 정면승부를 걸어 볼 만한 작품이다. 한 건축가의 집념이 한국 막걸리의 수준을 단숨에 끌어올렸으니, 전통주 애호가로서 감사하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까다로운 ‘지역특산주’ 허가 과정을 거쳐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는 11월부터 시중에 판매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술은 태어난 곳에서 마셔야 감동이 배가 된다. 통영 해산물 요리의 진수와 한국 막걸리의 수준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께는 통영 야소골 여행을 적극 추천한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