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용석의 시사탐방] 선인장 가시와 ‘나의 불안전 불감증’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1-24 18:59:34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3주 전 일이었다. 비좁은 서재 창가에 있는 화초에 물을 주고 마른 잎들을 정리하다 그만 선인장 가시에 찔렸다.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에 가시가 여러 개 박혔다. 큰 가시 몇 개는 돋보기를 끼고 뽑았다. 아주 작은 가시들은 어찌할 수 없어 피부과 의원에 가서 뽑아냈다. 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는데, 며칠 뒤 손가락에 통증을 느꼈다. 다시 의원에 갔다. 미세한 가시가 깊이 파고들어 손가락 끝을 절개해서 뽑아내야 한다고 했다.

맙소사!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원고 작업을 하는데도 지장이 많을 터. 우선 집게손가락 ‘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마취를 권했지만, 그냥 받다가 심한 고통을 참아야 했다. 어찌하여 꼭 이때 마감할 원고들이 밀려 있단 말인가. 가운뎃손가락 수술은 한 주일 미루다가 며칠 전에 받았다. 상처가 천천히 아물어서 손가락 끝에 반창고를 붙이고 글을 써야 했다. 선인장이 미웠다.

온몸을 가시로 보호하고 있는 선인장을 조심했어야지! 선인장은 몇 년 전 선물 받은 것이었다. 지금 보니 그때 보다 두 배 이상 자랐다. 그간 선인장의 키가 컸다는 걸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다. 전에는 서서 팔을 내려뜨려도 선인장 끝에 닿지 않았으나 지금은 손가락 끝이 선인장 가시에 쉽게 찔릴 만큼 됐다. 이제 과제는 ‘안전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서재 창가는 내 일상에서 친근하고 소중한 곳이다. 창문을 자주 열어 환기를 하고, 화초에 물을 주며, 종종 창가에 서서 먼 산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선인장 가시와 조우할 일이 많은 곳이다. 우선 대책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선인장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다. 집안 곳곳을 물색해 발코니 한구석으로 옮기기로 했다.

막상 화분을 옮기려는데, 따스한 햇볕을 쬐며 더없이 행복해하는 선인장이 눈에 들어왔다. 선인장은 느긋하게 두 눈을 감고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기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자리는 햇볕이 가장 잘 들고 통풍도 가장 잘 되는 곳이다. 나는 그제야 선인장이 그곳에서 아주 건강히 쑤욱 쑥 자란 이유를 실감했다. 내가 그를 강제로 이주시킨다면 그에겐 참을 수 없는 폭력이 될 터였다. 선인장은 그곳에서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사고는 내 탓이었다. 모든 잘못은 ‘나의 불안전 불감증’ 때문이었다. 불안전 불감증이라고? 이는 오래전 내가 우리 의식에서 ‘안전 불감증’을 대체하겠다고 만들어낸 말이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안전을 불감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전 곧 위험을 불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강조하자면 안전 불감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삶에 안전이 보장돼 있다면 못 느껴도 문제 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삶의 조건은 희망사항이리라. 문제는 불안전한 것이 일상생활 곳곳에 상존하는데도 감지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곧 ‘불안전 불감증’이 문제다. 이 말이 어색하다면 바꿔 쓸 수도 있다. ‘위험 불감증’이라고.

물론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은 안전 문제가 심각한데 그걸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전 문제, 안전 수준 등의 표현과는 달리 안전 불감증은 개념적 전도의 사례이며 일상적으로 반복 사용하면 의식 형성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왔다. 오래전 본지 ‘아침숲길’ 지면에 그런 내용으로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2003년 3월 9일 자, 불안전 불감증의 비극). 말꼬투리라도 잡아서 경종을 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험을 못 느낀다고 하면 좀 더 경각심을 가지리라는 바람도 있었다.

2003년 칼럼은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계기로 기고한 것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고와 참사가 있었다. 그간 개선된 점도 있지만,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 점들도 많다.

더 악화된 것도 있다. 참사의 비극 앞에서 공동체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나의 불안전 불감증’을 반성하지 않고, ‘너의 불감증’이라고 미루며 ‘너희들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려는 치졸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의 극단은 ‘이태원 참사’에서도 나타났다. 모든 것을 ‘이태원의 탓’으로 돌리려는 비열함도 슬쩍슬쩍 비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전 감수성뿐만 아니라 인간적 감수성도 실종되었다.

이태원에 핼러윈 축제가 없었더라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 이태원이라는 장소가 없었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까. 전제적(專制的) 통치자와 관료라면 그 장소 출입을 금지하거나 아예 폐쇄하기도 했으리라. 인류 역사에 그런 유사 사례가 있어왔다. 이태원 참사 직후 나온 발언들에는 전제적 의식의 흔적들이 담겨있었다.

나는 선인장을 제자리에 두었다. 그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트 모양을 그린 스티커를 그 주위에 붙여놓았다. 내가 창가에 다가설 때마다 스티커가 잘 보이도록 했다. 여전히 부족한 나의 불안전 불감증을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하트를 그려 넣은 건 ‘미운 선인장’을 더 잘 보살피겠다는 다짐이었다.

김용석 철학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서면의 빌라왕? 임대인 돌연 잠적…세입자들 발 동동
  2. 2을숙도에 ‘부산판 스미소니언 박물관’ 건립 탄력
  3. 350대 "도우미 청바지 입어 기분 나쁘다"며 노래방 주인 때려
  4. 4식약처, 유아인 프로포폴 투약 수사의뢰…경찰 소환 조사 후 출금
  5. 5부산 울산 경남 밤부터 비 내려 내일 낮 그쳐...평년보다 따뜻
  6. 6[근교산&그너머] <1318> 청송 해월봉~구리봉
  7. 7튀르키예-시리아 강진 사망 동일본대지진 압도할 듯...민심 폭발
  8. 8서울대 인문사회 등록 전 합격 이과생>문과생...통합수능 부작용?
  9. 9일제 수탈 표지석 두 동강 방치 “아픈 역사 흔적…보존·연구를”
  10. 10총경 보복인사 논란 가열…마산 경찰 1인시위
  1. 1을숙도에 ‘부산판 스미소니언 박물관’ 건립 탄력
  2. 2이준석계 천하람 돌풍에 安·金 누가 득볼까
  3. 3북한 도발 대비…6년 만에 ‘전국 민방공훈련’ 부활(종합)
  4. 4양준모 부산시의원 “원도심 통학로 안전망 마련해야”
  5. 5부산시의회, 부울경 특별연합 규약폐지안 의결
  6. 6여 “李 방탄용 반헌법적 폭거” 야 “양심 있다면 말조심하라”
  7. 7민주당 “대통령 부인은 수사 안 해”…한동훈 “사법 시스템에 따라 처리”
  8. 8文, 조국 저서 추천 "저자 처지가 어떻든 좋은 책, 안타까운 마음"
  9. 9이상민 탄핵안 가결...헌정 첫 국무위원 탄핵
  10. 10김기현 다시 안철수 오차범위 밖 앞서..."'윤-안 연대' 발언 영향?"
  1. 1금감원發 금융지배구조 개혁, BNK사외이사 물갈이 수순?
  2. 2아이폰 유저 설렌다…애플페이 한국 출시 공식화
  3. 3“해외 여행객, 부산으로 오세요” 박형준 시장 서울서 관광세일즈
  4. 4해운대 그린시티 지역난방 16% 인상…주민 “요금 폭탄”
  5. 5가오슝 하늘길 ‘활짝’…에어부산, 3년 만에 운항 재개
  6. 6“외국인 불법 토지거래 확실하게 걸러낸다”
  7. 7주가지수- 2023년 2월 8일
  8. 8시판 중인 포기 배추김치 나트륨 함량, 업체마다 천차만별
  9. 9바다 내비게이션으로 선원 응급처치 지원
  10. 10벡스코 “코로나 딛고 제2의 도약”…전시 경쟁력 강화
  1. 1서면의 빌라왕? 임대인 돌연 잠적…세입자들 발 동동
  2. 250대 "도우미 청바지 입어 기분 나쁘다"며 노래방 주인 때려
  3. 3식약처, 유아인 프로포폴 투약 수사의뢰…경찰 소환 조사 후 출금
  4. 4부산 울산 경남 밤부터 비 내려 내일 낮 그쳐...평년보다 따뜻
  5. 5서울대 인문사회 등록 전 합격 이과생>문과생...통합수능 부작용?
  6. 6일제 수탈 표지석 두 동강 방치 “아픈 역사 흔적…보존·연구를”
  7. 7총경 보복인사 논란 가열…마산 경찰 1인시위
  8. 8옛 한전CY 등 공공기여금으로 구·군 공공시설 짓는다
  9. 9'금정구 암매장 살인' 항소심서 징역 30년
  10. 10울산교육감 보선 4파전 재편…세부공약 알리기 경쟁
  1. 1후보만 ‘4+α’…롯데 4, 5선발 무한경쟁
  2. 2부산스포츠과학센터, 9일부터 본격 운영
  3. 3“올해 류현진 등판 땐 토론토 3승 4패”
  4. 4남미 4개국, 2030 월드컵 공동개최 추진
  5. 5아시아실내육상선수권서 우상혁 올해 첫 점프
  6. 6최악 땐 EPL 퇴출…맨시티, 독이 된 오일머니
  7. 7“쥑이네” 배영수 극찬 이끈 이민석…노진혁은 노하우 대방출
  8. 8우승 상금만 45억…첫승 사냥 김주형, 랭킹 ‘빅3’ 넘어라
  9. 9캡틴 손흥민, ‘아시아 발롱도르’ 6년 연속 수상
  10. 1043세 로즈 ‘부활의 샷’…4년 만에 PGA 우승
우리은행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불신 큰 지방의회 권한 확대? 다수당 견제책 등 선결돼야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단체장 권한 집중 획일적 구조…행정전문관 등 대안 고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불어 살며 지켜가야 할 피란수도 부산
55보급창은 반드시 공원이 되어야 한다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자연의 법, 인간의 법
낙동강 녹조를 그대로 둘 것인가
기고 [전체보기]
‘부산이라 좋다, Busan is good!’인 이유
수산자원, 잘 이용하고 관리해야
기자수첩 [전체보기]
학교 신축 공기지연, 노조 탓만 할 수 있나요?
김해시장, 소통행정 이후가 중요하다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한국은 여기까지다
안전하게 내려오는 방법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3차 세계화, 우리는 괜찮을까
‘죽어도 자이언츠’를 보면서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선인장 가시와 ‘나의 불안전 불감증’
민심, 그 숨은그림찾기의 비밀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문화자산을 물려받는다는 것
토착화한 망자를 위한 노래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근자감’과 헤어질 결심
‘먼저 온 미래’ 영도에서 2030 부산 해법 찾기
도청도설 [전체보기]
리더의 말
노인 나이 혼돈시대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너무나 완벽한 음식 식해
여러분 모두 미식가 되세요!
사설 [전체보기]
초유의 장관 탄핵…‘외통수 정치’ 피해는 국민 몫이다
담임 맡기 싫다는 교사들…교권 위기 해결책 찾아라
세상읽기 [전체보기]
사랑
부산진 수상비행장을 아세요?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 지출의 원칙과 난방비 지원
의사 인력 확충의 올바른 방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새로운 해양시대
노아 방주의 실천적 교훈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수평선을 바라보며 동백꽃을 사랑하며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한반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위태로운 중국의 미래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신정과 설날 사이의 단상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다시 블랙리스트
정치인의 언어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근고지영
단석산 신선사의 목탁소리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새해엔 선거개혁 위한 결단 기대한다
정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이태원 연가
특별기고 [전체보기]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노엘합창단
절대음감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당 김은호의 ‘매란방’
풍곡 성재휴의 ‘배암 나와라’
CEO 칼럼 [전체보기]
ESG경영 골칫거리 해결한 시스템
초고령 선진국에 걸맞은 변화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