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11월 27일 밤. 부산 역사상 가장 큰 화재로 기록된 부산역전 대화재라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집을 잃은 이재민만 3만여 명. 추운 겨울인데다, 전쟁통이라 정부가 가진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천우신조란 말이 딱 맞게도 리차드 위트컴 장군께서 도와주셨습니다. 당시 주한미군 군수사령관이었던 장군께서는 미군의 군수품을 풀어 3만여 명의 이재민에게 천막과 옷,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미군이 쓰려고 준비된 물품을 부산시민을 위해 썼다고 군법 위반으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 소환됐습니다. 장군은 “전쟁은 총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호소로 응답했습니다.
부산시민을 위한 장군의 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부산대학교 장전캠퍼스 50만 평을 확보하면서 온천장에서 접근할 수 있는 도로도 만들어 주었고, 퇴역 후에는 부산에 남아 전쟁고아를 돌보는 사업에 매진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대부분의 미군이 고향에 묻힌 것과는 달리 부산 유엔묘지(유엔기념공원)에 묻히기를 희망하셔서, 유엔묘지에 안장된 분들 중 유일한 장성입니다.
위트컴 장군의 부산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100여 명의 시민이 뭉쳐서 장군의 조형물을 건립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11월 11일 ‘턴 투워드 부산’(유엔참전용사 국제 추모식)에 맞춰 출범한 시민위원회는 어떤 직함이나 계급도 버리고 모두 부산시민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부산역전 대화재 때 은혜를 입은 3만 명의 부산 시민이 각자 1만 원씩 기부하는 거대한 물결이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동상 건립에 필요한 3억 원은 정부 예산으로 확보할 수도 있고, 부산의 기업인 중 전액을 부담하겠다고 나선 분도 계셨지만, 시민위원회에서는 정중히 거절하고 범시민 운동으로 승화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모금 운동 중에 한 분이라도 더 많은 시민이 장군의 업적과 정신을 알게 되시기를 희망한 것입니다.
우리 부산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최후 보루였습니다. 부산을 지킬 수 있었기에 유엔군이 한반도에 진주할 수 있었고,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했으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라 자유와 풍요를 만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부산의 시민이 나서서 위트컴 장군의 정신을 기리는 시민운동이라는 도도한 흐름이 완성되기를 소망합니다. 위대한 부산시민 3만 명이 십시일반으로 동참해 과거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위대한 시민운동이 완결되기를 염원합니다. 시민위원회에서는 1만 원의 기부에 동참하신 모든 시민의 이름을 동상 주변 조형물에 새겨 영구히 보전할 계획입니다.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마음은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 냅니다. 부산 사람보다 더 부산을 사랑한 위트컴 장군을 기리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부산에 더욱 따뜻한 내일을 만드는 힘이 움트기를 기대합니다.
박수영 국회의원·부산 남구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