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 쓰는 말로 ‘팻 핑거(Fat finger)’라는 단어가 있다. 주로 증권시장 트레이더들이 컴퓨터로 주문을 입력할 때 굵은 손가락 때문에 자판을 잘못 눌러 생긴 오타에서 유래됐다. 당초 의도와는 다른 숫자를 입력해 큰 손실을 보는 사고다.

2005년 일본 미즈호증권의 한 직원은 61만엔(약 585만 원) 짜리 제이콤 주식 한 주를 팔려다 주식 61만 주를 1엔(약 959원)에 내놨다. 90초 만에 실수를 알아채고 주문을 취소했으나 그새 수만 건의 주문이 체결됐다. 공매도 물량까지 회수해 미즈호증권은 4000억 원대 손실을 봤다. 2013년 한맥투자증권은 한 직원이 옵션거래에서 잔여 일수를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460억여 원 손실을 입었다. 결국 한맥투자증권은 파산했다.

스마트폰 모바일 뱅킹이 활성화하면서 일반인도 종종 팻 핑거를 경험한다. 휴대전화 자판 간격이 좁아 상품거래시 은행계좌 번호를 잘못 누르거나 금액을 잘못 표시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잦다 보니 예금보험공사가 ‘착오 송금 반환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보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착오송금인으로부터 총 1만 2669건(184억 원)의 지원 신청을 받아 3862건(48억 원)을 반환했다. 반환 지원 대상 금액이 적어 상한을 기존 1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모바일 주식거래에서도 매도나 매수 버튼을 실수로 바꿔 눌러 큰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잦다. 아나운서 장성규 씨는 이런 실수로 1초 만에 2000만 원을 날렸다는 경험담을 공개해 많은 공감을 받기도 했다.

은행권에도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 최근 경남 남해축산농협이 금리 10% 적금 10억 원어치를 창구에서 판매하려다 직원 실수로 비대면으로 잘못 판매했다. 9시간 동안 온라인에 노출되면서 재테크족들이 몰려 5800계좌 이상 1277억 원대의 계약 금액이 몰렸다. 남해축협은 사태를 파악하고 전 직원을 동원해 해지 요청을 하고 있으나 계약 취소율이 저조하다. 남해축협이 지급해야 할 이자만 80억 원으로 경영위기에 빠질 수 있다. 현재 농협중앙회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남해축협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자발적으로 해지하는 사람이 있으나 명분이 약하다며 거부하는 이들도 많다. 앞으로도 금융기관이 고금리 상품을 내놓고 가입자가 늘면 언제든 실수였다며 해지를 촉구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기관의 신뢰는 중요하다.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금융거래 안전 시스템을 철저히 갖춰야 할 것이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