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벌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다. 재벌의 일꾼으로 죽었지만 기억을 지닌 채 재벌 3세로 다시 태어난 주인공이 겪는 스토리다. 전생의 경험은 곧 현생의 미래를 아는 능력이기에 환생한 재벌 3세의 지지 않는 선택 과정이 꽤나 흥미진진하다. 허허벌판 5만 평의 분당토지는 개발계획으로 240억 원의 종잣돈이 되고, 1997년 IMF 외환위기에 달러로 남겨둔 전 재산은 엄청난 부를 창출한다. 또한 미래 먹거리는 반도체라는 등, 그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재벌 1세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관전 포인트다. 그 시절을 직접 겪은 기성세대에게 마치 ‘나도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엘시티 비리, 스노캐슬 부도, 초고층 주거빌딩으로 잠식당한 친수공간, 부울경 메가시티 위기 등 부산의 공공정책 영역에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정보와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결과는 매한가지일 수도 있다. 실례를 찾아보자. 첫째, 300㎞가 넘는 부산의 친수공간이 주거빌딩으로 점령당했다. 해안에 바짝 접한 공간까지, 갈수록 고층화되면서 말이다. 다중이용시설로 분류되는 업무·상업빌딩과는 달리 초고층 아파트는 경관을 사유화했고, 개발 당시 해안의 오픈스페이스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부산의 친수공간에서 반드시 확보해야 할 구간을 50ｍ 내지 200ｍ로 확정했다면 어떤 개발사업이 추진되더라도 기본적인 해안을 조망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는 물론 매년 태풍 걱정도, 경관 사유화 우려도 줄지 않았을까?
둘째, 부산의 랜드마크를 비롯해 주요 시설·기능을 선정하는 논의 과정에 관한 아쉬움이다. 북항재개발사업의 오페라하우스, 황령산 스키돔이 그러하다. 부산에 필요한 시설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했다. 필요하다면 어느 시기에 할 것이며 어떤 위치에 조성하되 어느 정도 규모가 적정한가?라는 기본적 논의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민간투자사업이라는 제안이 시 재정을 아끼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실제로 오페라하우스는 대기업이 1000억 원을 투자해 콕 집어 북항에 건설하겠다는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처음 건축비는 현재 2500억 원이 됐다. 황령산 스키돔은 두말할 것도 없다. 결국 실내스키장 규모는 2분의 1로 축소되고 사업기간이 지연되면서 상가분양이 늘어나는 등 총체적 난국을 겪었다. 논의 과정이 생략되면서 사업을 포기할 기회도 잃고 더 많은 갈등이 유발됐던 것이다.
셋째, 대단위 사업일수록 한꺼번에 개발·분양하며 청산하려는 것도 문제다. 미래 투자가 쉽진 않지만 규모가 크고 미래 먹거리 사업을 추진할수록 공공은 긴 호흡으로 기반시설과 여건 마련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투자비 회수가 목표인 듯 택지개발사업만 완료되면 배후지역과의 연계, 접근도로, 공원, 앵커기능보다 100% 토지분양에 목숨을 건다. 개발이익은 토지분양이 아니라 여건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더 크게 도출된다. 마찬가지로 조성비에만 약 1200억 원이 소요된 시민공원을 굳이 한꺼번에 조성해서 개장한 지금과 달리, 구역별로 나누어 시민이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공원으로 점차 개방했다면, 그 과정에서 시민이 참여하고 더 경제적인 공원으로 조성했다면 어땠을까?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잘못된 혹은 누락한 의사결정 과정이 반복돼서는 안된다. 반복된 오류는 도시를 기형적으로 만들고 갈등을 증폭시킨다.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최선의 의사결정을 위해 꼭 지켜야 할 것, 갖춰야 할 기준을 축적하면 갈등도 오류도 없앨 수 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본구상과 계획, 실시설계, 착공·준공뿐 아니라 사후 운영·관리계획까지 포함하고, 필요 인력을 양성하는 준비도 해야 한다. 개발사업이나 각종 정책이 완료됐다고 끝이 아니라 사후평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계데이터를 축적하고 각종 정보, 특히 예산을 들여 수립한 용역보고서 자료는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부산은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가능성이 큰 도시다. 그렇기에 자칫 모든 것을 하려다가 호구 되기도 쉽다.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각각의 사업과 정책에 제대로 축적돼야 하며 그것이 역사가 되고 미래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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