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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도 칼럼] 스크루지 여사와 1.6%

부산표 ‘크리스마스 캐롤’ 구두쇠 영감 대신 그 부인 구원과 사랑 주제 잘 살려

새해 성장률 역대급 저조, 미래세대 주름살 없기를

  • 정상도 기자 jsdo@kookje.co.kr
  •  |   입력 : 2022-12-26 19:57:3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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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은 해마다 이맘때 ‘인간이 되어야 할 인간’들을 깨우친다. 돈이 최고인 줄 알았다가 돈의 노예가 된 자신을 발견하고 새 사람이 되는 과정이 ‘크리스마스 캐롤’(1843)에 담겼다. 찰스 디킨즈는 이 소설에 인간의 구원이란 주제를 녹여내면서 빈부 격차, 아동 학대 등 19세기 산업사회에서 피폐해지는 삶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21세기에도 디킨즈가 유효한 건 우리 주변에 착하게 거듭나야 할 인간이 여전히 많고, 그만큼 부와 노동에서 소외된 약자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디킨즈는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위대하다는 영국 작가다.

지난 24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부산시립예술단 연합공연 ‘크리스마스 캐롤’ 주인공은 그 어두운 외톨이 영감 스크루지가 아니었다. 성공한 사업가라 자부하지만 돈만 밝히고 치매가 의심되는 70세 여성이다. 메리 스크루지, 원작 주인공 에브니저 스크루지의 부인, 스크루지 여사라 하겠다.

짚고 넘어갈 게 있다. 23일과 24일 세 차례 공연은 전석 매진이었다. 연말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부산표 공연의 성공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초연됐다. 그 배경은 코로나19 사태에 지친 시민에게 부산시립예술단이 만든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것. 부산시립합창단 부산시립극단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뜻을 모은 이유다. 2015년 ‘부산 맥 아리랑’ 이후 시립예술단 연합공연 맥을 이었다.

이 작품은 스크루지 여사가 이끌지만 스크루지 영감도 나온다. 디킨즈가 에브니저 스크루지를 통해 신랄하게 풍자하고자 했던 19세기와 김지용 부산시립극단 예술감독이 연출한 21세기 가족극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 사회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이름이 실마리 가운데 하나다.

디킨즈 덕분에 고약한 구두쇠 스크루지(Scrooge)는 일반명사가 됐다. 스크루지는 이제 아무도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는, 구두쇠를 의미하는 말로 굳어졌다. 에브니저(Ebenezer)는 더 특별하다. ‘도움의 돌’,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념하는 돌이란 구절이 구약성서에 나온다. ‘에벤에셀’이란 브랜드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에브니저 스크루지는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만난 뒤 개과천선한다. 디킨즈가 던지는 구원의 메시지는 몹쓸 한 인간에 그치지 않고 산업사회 초기 흑역사를 극복하려는 염원으로 넓어진다. 구두쇠가 도움의 돌이 되는 사회다.

그렇다면 오늘의 문제는 어디 숨어 있을까. 이는 스크루지 여사가 벌여놓은 사업들이 난관에 부딪히는 장면에서 언뜻언뜻 비친다. 우선 임금을 제대로 받아야겠다며 그녀 집 앞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이다. 바람직한 노사 관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숙제다. 또 하나, 막대한 사업을 투자한 개발 사업이다. 그녀는 “내 돈 들여서 개발하겠다는데 무슨 난리냐”고 묻지만, “아무리 돈이 있더라도 함부로 환경을 훼손할 순 없다”는 대답을 듣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중요해진 자연과 조화, 기후위기 대응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보다 심한 건 사람에 대한 경멸과 이 때문에 느끼는 모멸감이다. 먹고 살기 힘들수록 그 강도가 높아진다. 그녀가 자기 무덤에 침을 뱉는 이웃을 목격하는 장면은 반전의 웃음 코드이자 착한 인간으로 변화의 상징이다.

이런 곡절을 거쳐 스크루지 여사는 에브니저를 만나고 ‘남을 구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구하게’ 되며 ‘남김없이 사랑하라’는 교훈을 얻는다. 그 마지막은 성탄절을 앞두고 공연 준비를 하는 어린이들에게 자기 공장을 연습장으로 내주는 해피엔딩이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가 저절로 떠오르는 결말이니 스크루지 여사가 메리 스크루지인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귀한 공연을 봤다. 연말에 누린 호사다. 여기에 덤이 있었다. 함께 공연장을 찾은 후배 부부가 건네준 선물이다. 같이 다녔던 여행지 등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만든 한정판 새해 달력이다. 제대로 송구영신 모임을 하고 선물까지 받았으나 마음이 무거웠다. 2023년을 상징하는 숫자 1.6%가 떠오른 까닭이다.

정부가 전망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다. 사실상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전망치라는 해석이다. 해외로부터 몰아쳐오는 복합위기에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 고통이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경제 위기는 가장의 위기고, 가장의 위기는 바로 가족의 위기다. 나라 전체가 이 지경이면 부산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물어보나 마나다. BNK경제연구원은 소비심리 위축, 투자 감소 및 수출 둔화, 부동산 경기 하락 등 영향으로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 경제 성장률을 1.6%로 내다봤다. 전국을 1.7%로 예상하고 그 보다 0.1%포인트 낮췄다.

가족극답게 이날 문화회관엔 그 어느때보다 어린이 관객이 많았다. 미래세대 얼굴에 구김살이 가지 않도록 정부나 부산시나 새해 살림을 각별히 유의해야 하겠다.

정상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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