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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명의 오션 드림] 새로운 해양시대

부산대 교수·수소선박기술센터장

  • 부산대 교수·수소선박기술센터장
  •  |   입력 : 2022-12-29 20:19:5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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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자 제프리 삭스가 저술한 ‘지리 기술 제도’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7만여 년 인류 발전 과정을 ‘세계화’로 설명하는데 지리 기술 제도 각각은 일곱 차례 세계화 과정의 방법론적 주역을 의미한다. 인류는 가까운 지역 위주의 ‘지리’적 세계화를 거치고, 기마나 항해 ‘기술’ 등을 활용해서 먼 거리 세계화를 이루고, 이 과정에서 독립적으로 가지던 ‘제도’가 널리 보편화되면서 발전해왔다는 주장이다.

삭스는 구석기·신석기·기마·고전시대를 합친 6만9500년의 장대한 시간을 수렵과 농업 중심의 ‘구시대’로 본다. 이후 300년은 글로벌 제국들의 출현을 끌어낸 ‘해양시대’, 그다음 200년은 현대사회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한 ‘산업시대’, 그리고 서기 2000년 이후부터를 ‘디지털시대’로 나누어 정의한다. 다섯 번째 세계화로 해양시대를 드는데, 여기서 해양의 역할은 인류 활동의 기반으로 정의한 육지와 다른 환경적 의미일 뿐이다. 농업을 중심으로 주요 시대를 정의한 것을 보면 육지의 중요성에 기반을 둔 저자 사상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적 석학의 분석이지만 의문을 제시하고 싶은 대목이다. 인류 역사의 키워드인 지리 기술 제도를 ‘육지’라는 공간을 통해 치밀하게 연결하면서도 ‘해양’을 독립된 가치를 가지는 공간으로 정의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삭스는 또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문명의 발생 이유를 ‘행운의 위도’라는 개념을 이용해 설명한다. 유라시아 중심의 북위 25~45도 사이의 지역을 일컫는 개념으로, 역사를 통틀어 항상 높은 인구밀도를 유지하며 문명이 발달했고 시대별로 강성국가가 나타나고 스러지기를 반복한 이 지역을, 환경결정론적 관점에서 행운의 결과로 본 듯하다. 그런데 이 행운의 위도를 해양의 관점에서 보면 같은 위도 중에서도 유독 바다와 접한 지역만이 오늘날까지 번성을 유지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양시대 스페인부터 산업시대의 영국, 현대 디지털시대의 미국이 그러하고, 극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경제 중심지 등이 모두 여기, 행운의 위도 내에서 해양과 연결돼 있다. 문명의 흥망은 삭스가 정의한 ‘특정 위도’가 아니라, ‘해양과 인접한 특정 위도’에 따라 결정됐다고 봄 직도 하다. 인류에게 있어 해양의 중요성과 해양을 제대로 대접해야 하는 이유를 역사가 이렇게 말해준다.

인류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지질시대를 인류세(人類世)로 정의한다. 국제지질학연맹 소속 인류세 실무위원회가 인류세의 특성을 정의하는 데 필요한 지질 표본 후보와 시작점 결정을 위해 방사성원소 화석연료 등 후보물질을 대상으로 투표를 시작했다. 인류에 의한 인위적 환경 변화가 지구 생명체 세대교체의 시작일 수도 있는 새로운 지질시대의 원인으로까지 지목되는 현시점에서, 무엇이 선정되든 최종적으로 결정된 후보는 건강한 인류사의 원흉으로 낙인찍힌다. 핵폭발 방사성원소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지만,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에서 화석연료도 무시할 수 없다.

지질학적 분석에 의하면 삭스가 정의한 행운의 위도 지역은 1억 년 전에는 열대 습지였다. 땅속에 묻힌 채 화석연료가 되어 버린 열대식물이 1억 년이 흐른 후 혜성처럼 등장해서 ‘산업시대’를 이끌며 인류 역사를 발전시켰다. 그런데 인류세에 와서는 ‘나쁜 역사’로 거론되니 관점에 따라 역사는 아이러니다.

기후변화에는 해양의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지구상 가장 큰 물리력인 태풍은 해양에서 발생하고 범지구적 기후재앙도 해수 온도 상승의 결과다. 그런데 기후변화 억제용 친환경 노력은 여전히 육지에서만 중요하고 해양은 아직도 주된 관심 영역이 아니다. 그래도 최근 들어 눈에 띄는 해양에 대한 시각의 변화나 다양한 활동이 다소 긍정적인 흐름이라 조금은 다행이다. 해양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지정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SDGs)’가 대표적 사례다. 2000년부터 유엔이 가동하는 지구 관리 프로그램이, 2015년부터 2단계 프로그램인 지속가능발전 목표로 접어들었다. 2030년까지 지속가능한 인류 발전을 위해 달성해야 하는 공동 목표 17개를, 인간 지구 번영 평화 파트너십 5개 영역에서 관리한다. 이 중 지구 영역에서 ‘드디어’ 해양이 육지와 동등한 중요도로 다루어지게 됐다. 해양의 역할을 이제 더는 선박의 운항 공간이나 수산업의 공간적 배경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근본적으로 시각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 삭스의 행운의 위도처럼, 인류발전에 의미를 부여할 영역이나 구성 요소를 해양에서도 찾아야 한다.

땅속에 묻혔던 1억 년의 세월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산업시대가 열렸듯이, 40억 년 지구 역사를 품은 해양의 세월이 좀 더 자세히 모양을 드러내면 인류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삭스의 해양시대가 아닌 새로운 의미의 해양시대를 기대하는 시점에서 여러 생각이 든다. 산업시대에 영국이 맹주로 자리매김했던 이유가, 화석연료가 매장된 행운의 위도상에 우연히 위치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리적 행운에 더해 가치를 찾아내는 노력이 역사의 결과로 나타났을 거라는 믿음은 확실하다. 그래서 해양을 대하는 포괄적 미래 전략이 더욱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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