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만 해도 대학 리포트나 논문을 쓰려면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를 뽑아 내용을 읽고 주제별 목록화 작업부터 해야 했다. 문헌조사다. 공부가 직업인 교수들조차 이 단계를 성가시게 여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문헌조사는 대폭 간편해졌다. 상당수 책과 논문이 디지털화되어 있어서 집에서 PC를 켜고 검색기만 돌리면 자료가 줄줄 쏟아진다. 과정의 편리성과 결과물의 수준이 반드시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다운받은 자료를 출처 표시도 없이 단순 짜깁기 하는 표절 행위 말이다. 대학마다 ‘터니틴’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표절 여부를 잡아내느라 진땀을 흘린다.
인터넷은 비교도 안될 만큼 획기적인 과제 도우미가 최근 등장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오픈AI라는 세계 최대 인공지능 연구소가 작년 11월 30일 공개한 챗GPT는 주제를 입력하면 몇초 안에 거기 맞는 글을 써준다. 인터넷은 검색된 자료를 빼고 더하는 수고라도 해야 했지만 로봇은 완제품을 제공한다. 소설이나 시도 가능하다. 미국 대학과 고등학교에서는 벌써부터 고민이 크다고 한다. 학생이 직접 썼는지 AI가 대신 써줬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들조차 “기계 도움을 받는 게 왜 문제냐”고 되묻는다. 계산기가 있는데 굳이 암산한다고 애쓸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다. 지금으로선 AI가 도달하지 못하는 보다 심오한 주제를 과제로 내주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게 교육계 의견이다.
필자가 직접 챗GPT에게 “부산의 청년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 해결책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챗GPT는 “지방에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일반론에 그치지 않고 “일자리에 원격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 제안했다. “‘콩글리시’라는 단어를 아느냐” 물었더니 설명이 상당히 구체적일뿐 아니라 심지어 한국인에 대한 배려까지 잊지 않는다.
불과 몇년 전 뇌과학 전문가들은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출현, 일명 ‘특이점’ 도래가 100년 이상 걸린다 했지만 지금은 수년 내라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본다. AI는 이미 우리 곁에 왔다. 네이버가 개발한 대화형 AI는 홀로 사는 노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AI가 생성한 그림이 미술대회에서 최고상을 받는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기억하는 능력에서 인간은 결코 AI를 못 이긴다. 인간이 AI를 지배하느냐 지배 당하느냐는 의외로 단순한 데서 분기될 수 있다.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느냐 포기하느냐, 바로 그 순간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