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내게도 다 계획이 있어요

차경애 KBS 아나운서

  • 차경애 KBS 아나운서
  •  |   입력 : 2023-01-10 19:55:07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안식년에 뭐 하세요? 사람들이 묻는다. 기생충의 기석이에게만 계획이 있는 게 아니다. 내게도 다 계획이 있다. 난 무슨 일을 하든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는데 꽤 익숙하다. 퇴직 후의 계획도 10년 전부터 세웠으니까. 혹자는 말한다. 계획을 세우는 동안 주변 환경이 다 바뀌어버리는 속도의 시대에 무슨 계획이냐고. 그러나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모으고 그 계획이 이루어질 걸 상상하면 행복하다. 물론 계획을 세우더라도 계획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계획의 절반만 해내도 만족이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그걸 상상하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설사 계획한 대로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수정하면 된다. 조금 느리게 가면 된다. 난 지금 안식년의 시간이지 않은가.

오래전부터 서재의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 욕심이 많아 결혼 전에 읽었던 책도 부산 이삿짐에 잔뜩 실어 왔었는데 꼭 필요한 스피치 책과 아끼는 시집, 어린 왕자 등 몇 권만 남기고 과감히 버렸다. 그리고 그 빈자리엔 안식년과 퇴직 후 할 일에 대한 자료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안식년이 시작된 10월, 부산은 영화의 바다였다. 계획한 대로 매일 한편씩 다큐를 중심으로 11편의 영화를 봤다. 87년간 물질을 한 현순직 상군해녀의 이야기 ‘물꽃의 전설’, 화산연구를 평생 하다가 화산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카티아와 모리스 부부의 다큐 ‘사랑의 불꽃’ 등 사람들의 다양한 삶에 나의 삶을 반추해 보기도 했다.

또 3박 4일 혼자 여행을 하면서 나만의 시간도 가졌다. 경주 단석산을 마주하며 방송생활 38년을 돌아보고, 명상 바위에 앉아 앞으로의 시간을 그려보았다.

강의도 들었다. 요즘 지차체에서는 무료로, 실비로 여는 강좌가 많은데 평생학습관에서 배운 포토퍼니아, 글그램으로 지난 성탄절과 새해 카드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이뿐만 아니라 캘리그래피, 정리수납 등 배움의 계획도 하나씩 실천했고 가장 걱정했던 김장의 계획은 가족의 큰 박수 속에 김치냉장고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난생처음 담가본 김치, 그것도 겨울 농사라는 김장을 30kg이나 했다. 동영상을 보며 지인의 도움을 받아 백김치까지 담그니 한겨울이 든든하다.

그런데 안식년의 가장 중요한 계획은 나만의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거다. 분류한 파일에는 지역별로 그곳의 역사와 음식, 볼거리 등의 자료를 모았는데 특히 그 지역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한 기대가 크다. 경남에 가면 나를 아나운서로 뽑아주신 사장님을 만나고 싶다. 1985년 최종 면접시험 이후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사장님! 저 이제 퇴직합니다. 제가 KBS에서 아나운서로 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싶다. 40년 가까운 세월, 연세도 많으시고 또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되신 후라서 만나주실지 모르겠지만 그분과의 만남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서울에 가면 기상전문기자였던 이찬휘 선배를 만나고 싶다. KBS에 입사해 고정 프로그램으로 가장 먼저 한 방송이 일기예보였는데 아침뉴스에서 2~3분의 날씨 방송을 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출근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현재는 기상캐스터라는 분야가 독립돼있지만 그 당시에는 아나운서가 날씨 방송을 했다. 새내기 아나운서였던 내게 기상도를 읽는 법, 원고 작성법 등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 선한 웃음이 인상적이었던 선배. 만나면 함께 많이 웃을 것 같다.

경북에 가면 KBS 동기인 친구를 만날 거다. 여러 어려움으로 사표를 내고 경북 영주에 내려와 살고 있는 친구, 직종은 다르지만 수습사원 연수원에서 언니처럼 나를 챙겨주었던 친구, 각자 부산과 서울에서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다 보니 연락이 끊겼었는데 어느 날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불편했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꼬옥 안아줄 거다. 이 친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물이 난다.

이렇게 안식년 석 달 동안 계획대로 진행된 일, 그리고 수정하며 바뀐 계획들, 또 앞으로 진행될 2023년의 계획! 난 오늘도 그 계획에 대한 기대와 상상으로 가슴이 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삼전닉스 ETF 출시 때 투자자 보호 대신 시장 확대만 급급"
  2. 2軍 “北,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발사”
  3. 3[속보]만취상태로 예인선 오르던 선원 추락사…법원 “직무상 재해”
  4. 4해운대 벗어나 우리동네로…부산이 온통 극장이네요
  5. 5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6. 6“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7. 7“택시부제 풀었더니 매출이 쑥”…밀양시, 시범운영 거쳐 전면 해제
  8. 8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9. 9[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10. 10‘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1. 1軍 “北,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발사”
  2. 2‘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3. 3[속보] “전두환 내란 아냐” 김태규 ‘제명 촉구 결의안’의결
  4. 4김민석 부산 찾아 “전재수 시정 성공시키겠다”
  5. 5부산 국힘 “보좌진 유죄 선고…전재수 시장, 시민에 사과해야”
  6. 6[속보]우크라 외무 “한국 중요해…외교적 오해 해결바라”
  7. 7李대통령 “우크라, 상대국 원수 거짓말쟁이 만들어…사과 거부시 추가 조치”
  8. 8국힘, 중수청 앞서 “범죄자 천국될 것” 여론전(종합)
  9. 9靑 “이 대통령 ‘불의의 사고’ 표현, 부상 장병 위로한 것…북한 면죄부 주려는 것 아냐”
  10. 10李 “김지용, 친윤 아닌 반윤 검사” 중수청장 청문 요청키로
  1. 1"삼전닉스 ETF 출시 때 투자자 보호 대신 시장 확대만 급급"
  2. 2“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3. 3삼성중공업, 올해 LNG운반선 20척 수주. 글로벌 경쟁력 입증
  4. 4동래 플래그십 문 연 ‘르노’…미래차 R&D센터 내년 오픈
  5. 5북극 누빈 아라온호, 항로예측 기틀 마련
  6. 6"건보료 재정누수 심각…1000만원 초과 고액체납 2배 급증"
  7. 7최태원, 9440억 규모 SK 지분 매각 결정…노소영 재산분할액과 같은 규모
  8. 8국민·하나·부산은행도 당했다…금융권 해킹 피해 확산(종합2보)
  9. 9신한은행 해킹 서버서 “‘중국어 AI 침투도구’ 흔적 발견”
  10. 10대선주조 부산 문화 앞장…‘부산국제록페스티벌’ 8년째 후원 행보
  1. 1[속보]만취상태로 예인선 오르던 선원 추락사…법원 “직무상 재해”
  2. 2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3. 3“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4. 4“택시부제 풀었더니 매출이 쑥”…밀양시, 시범운영 거쳐 전면 해제
  5. 5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6. 6‘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7. 7김해시민 민생회복지원금, 2주 만에 지급률 80% 돌파
  8. 8시민이 만든 '부캉이' 공공 자산으로…부산시, 상표권 독점 막는다
  9. 9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10. 10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1. 1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2. 2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3. 3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4. 4한국 여자 양궁 단체전 인도에 져 은메달…8연패 무산
  5. 5성적 부진·단장 공백·감독 결별·구단주 경고…김해FC ‘사중고’
  6. 6자존심 지켰다…남자 양궁 리커브 단체전서 금메달
  7. 7LoL 대표팀, 대만 꺾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무실 세트 제패
  8. 8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9. 9HJ중공업, 8∼11일 KLPGA 챔피언십 대회 주최…부산서 처음 열려
  10. 10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나림 이병주, 더 일찍 법(法)으로 통(通)했다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민원인(들)
AI 패권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생곡소각장 정치적 셈법보다 원칙대로 추진해야
알래스카 LNG, 협력하되 국익이 최우선이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인공지능(AI)과 인류 멸종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