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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복지 지출의 원칙과 난방비 지원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  |   입력 : 2023-02-02 18:54:4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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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민주헌정체제의 복지국가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사회서비스와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갖췄다. 먼저, 사회서비스 보장이다. 보육 교육 의료 요양 직업훈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보편적 사회서비스는 규범적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제공되는 것이 타당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이들 서비스의 공급·관리를 책임지는 것이 자유시장에 맡겨두는 것보다 사회 전체적인 편익이 훨씬 큰 특징을 가진다. 그래서 이것을 가치재 또는 준공공재라고 한다.

다음으로, 소득의 보장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의 제도적 장치가 작동한다. 첫째, 공공부조다. 이는 국가가 빈곤선 이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초생계의 충족에 필요한 현금을 제도적으로 지급하는 선별적 소득보장(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속한다. 둘째, 사회보험이다. 사회구성원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소득의 상실 또는 급감에 제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보편적 소득보장으로 실업보험·산재보험·노령연금·질병보험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 사회수당이다. 근로를 통해 소득을 얻기 어려운 경제·사회적 취약 인구에 속하는 아동·장애인·노인에게 국가가 재정에서 매달 현금을 지급하는 보편주의 프로그램으로 아동수당·장애인수당·노인수당(기초연금)이 여기에 속한다. 이외에도 국가가 특정한 조건을 걸어 일정 기간 사회수당을 지급할 수 있는데, 훈련수당과 학생수당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가의 복지 지출에서 특히 강조할 점은 필요의 크기에 상응하는 지원이다. 복지가 필요함에도 지원받지 못했거나 지원받더라도 필요가 충족되지 못한다면 이런 복지국가는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민주헌정체제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유럽 등 보편적 복지국가는 필요의 크기에 상응하는 지원이 제도적으로 잘 작동하기 때문에 코로나19와 같은 거대한 재난 상황에서도 기존 복지 체제의 대응력이 우수했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국가를 확립하지 못한 우리나라와 미국 등 많은 국가에서는 사각지대 같은 기존 복지체제의 취약성 때문에 코로나19 재난지원금에 크게 의존해야만 했다.

그런데 최근 난방비 폭등 상황에서 현금 지원 정책이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소득 하위 30%(1544만 명)에게 1인당 25만 원씩, 30~60%(1544만 명)에게 15만 원씩, 60~80%(1029만 명)에게는 10만 원씩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니까 전 국민의 80%에게 7조2000억 원의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정부는 취약계층(117만6000가구)에 지급되는 ‘에너지 바우처’ 금액을 2배 인상하고 가스공사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160만 가구) 난방비 요금 할인 폭을 2배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부자감세·복지축소의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정부·여당의 턱없이 부족한 난방비 지원 예산을 비판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정책 제안을 ‘난방 포퓰리즘’이라고 일축했다.

양측의 주장을 평가해보자. 먼저 정부·여당의 기존 취약계층에 국한된 지원 방안은 대상과 내용이 지나치게 협소하고 소극적이어서 고물가와 높은 에너지 비용으로 고통받는 서민과 저소득층의 다수가 지원에서 제외되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지원의 대상이 지나치게 선별적이기 때문인데, 이런 방식은 ‘미충족 필요’가 광범위하게 나타나서 보편적 복지 원리에 어긋난다. 다음으로 민주당의 정책 방안인데, 여기엔 두 가지의 잘못이 있다. 하나는 지원 대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원의 단위가 가구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와 포퓰리즘이라는 양극단이 아닌 보편적 복지국가의 올바른 정책 방안을 도출해보자. 첫째, 보편적 복지 원리의 ‘필요 충족’이 이뤄져야 하므로 하위 소득계층에 대한 지원액은 충분해야 하고 재정지출의 합리성·효율성이 높도록 지원대상을 소득 하위 60% 수준으로 정하되 민주당의 정책 제안을 참고해 소득 계층별로 차등 지원하도록 한다. 둘째, 보편적 복지의 필요 충족 원칙을 견지하려면 실업이나 사업실패 등으로 소득의 단절·급감에 처한 사람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선지원 후확인’ 방식을 도입하도록 한다. 셋째, 난방비와 물가는 생계를 같이 하는 가구 단위로 영향을 미치므로 지원 대상을 개인이 아닌 가구 단위로 삼아 가구원 수가 많을수록 1인당 지원액이 차감되는 가구별 지원 방안을 설계하도록 한다.

특히, 이번 난방비 지원 정책을 계기로 포퓰리즘 정치와 결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20년 3월부터 2년 넘게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수차례 지급했는데, 이 과정에서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기본소득 방식의 무차별적 현금 복지는 필요 충족의 보편적(맞춤형) 복지에 비해 복지·경제·소득재분배 효과가 모두 열등한 정치적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게다가 이번에 민주당 정책위가 제안한 난방비 지원 정책은 무차별적 기본소득 방식이 아니라 필요 크기에 따른 소득 계층별 차등 지원 방안인데, 이는 사실상 보편적 복지에 해당한다. 이제 정치권은 우리 국민이 포퓰리즘 정치에 더는 속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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