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등 공공기관 부산 유치를 위해 부산형 명문고를 설립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부산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자녀가 다닐 수 있는 고등학교를 별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이전 유인책이다. 학교의 설립·운영비는 이전 공공기관과 부산시교육청이 분담하고, 학생 모집은 전국 단위로 하되 출연기관 자녀에게 우선권을 주거나 일정 비율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런 발상은 공공기관이 수도권을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녀의 교육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공공기관이 제안하고 부산시교육청과 부산시가 적극 수용하는 모양새다. 협의도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특정직군의 자녀 배려를 전제로 한 명문고 설립이라니 우선 그 비교육적 발상에 아연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사립이 아닌 세금이 투입되는 학교다. 설혹 이전기관이 100% 설립 자금을 대고 세운 학교라 하더라도 해당기관 자녀에게 입학 우선권을 주는 건 옳지 않다. 공공기관은 국민이 낸 돈으로 운영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산시교육청이 재원을 분담하는 학교에 입학 특혜를 제공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지역에 이전기관 자녀가 다닐 학교가 없는 것도 아니다. 부산에는 일반고뿐만 아니라 과학고 외고 국제고 등 특목고와 자사고, 과학영재학교 등 다양한 고등학교가 존재한다. 자녀가 실력만 있으면 인문계든 자연계든 얼마든지 골라 진학이 가능하다.
부산형 명문고는 최근 활발히 언급되는 한국형 차터스쿨과 겉보기에 비슷하다. 차터스쿨은 미국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재정을 국가나 지자체의 세금 혹은 기부·후원금으로 충당하면서 학생들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다. 그러나 비용 없이 양질의 공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후원자나 기부자 자녀에게조차 입학권을 우선 보장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선발은 교육의 기본이다. 공공기관 이전 해법이 공교육의 근간을 허무는 방식이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현장의 괴리감이나 박탈감은 차치하더라도, 일반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고 지극히 당연하기도 할 것이다.
교육개혁이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실현할 핵심 과제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이를 위해 정부가 지방대 예산 집행권을 지자체에 대거 이관하고 지역에 교육특구를 추진하는 등 최근 속도를 내고 있는 각종 교육정책에 대해 지역에선 기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간과해선 안되는 포인트는 교육의 공정성과 형평성이다. 공공기관 이전은 이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균형발전을 견인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전에 매달리느라 공교육의 틀을 훼손하는 건 외양간 고치려다 소 잃는 격이다. 공공기관을 유치하고, 이를 계기로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궁극적으론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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