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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환대(hospitality)의 춤

억압·위계·차별을 벗어난 형식도 제약도 없는 막춤

마지막 남은 열린 춤이며 환대 정신이 깃든 춤이다

이상헌 춤 비평가·부산시립무용단 운영위원

  • 이상헌 춤 비평가
  •  |   입력 : 2023-02-22 19:55:57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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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환대의 도시다.’ 이 선언적 문장을 4년 전 국제신문에서 만났다. 환대를 다시 만난 것은 작년 발행한 인문 무크지 ‘아크 4호’에서다. 스물한 명의 필자가 환대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요즘처럼 춤이 난무하는 시대에 환대와 춤을 연결한 글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란 결코 ‘나’로 환원될 수 없는 다른 존재인데 타자가 중요한 까닭은 ‘나’라는 주체가 주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타자를 수용하고 환대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춤만 한 환대가 없을 듯한데 이 시대 환대의 춤은 어떤 것일까?

최근 젊은 세대의 관심이 춤에 몰렸다. 단군 이래 지금처럼 춤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여러 매체에서 앞다투어 다룬 적은 없었을 듯하다. 여기서 말하는 춤은 방송 댄스로 불리는 춤으로 케이팝에 맞춰 추는 춤이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런 장르의 춤을 접한 세대는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춤을 보고, 따라 하면서 즐긴다. 닫힌 공간에서 추던 춤을 거리에서 거리낌 없이 추고, 모르는 사람이라도 같은 춤을 추면서 연대감을 만들어 낸다. 이 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한다. 어느 나라 사람이 추더라도 이질감이 없다. 설명이나 이해 과정이 필요 없어 보는 순간 바로 흥이 전해지고 함께하는데 필요한 절차나 벽이 없다.

이 춤이 환대의 춤은 아닐까? 스스로 즐길 문화를 만들 기회가 없었던 청소년들에게 완성된 상태로 제시되는 춤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겠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이 춤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이 나와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아무나 만들 수 없고, 따라 하는 것만 가능하다. 이 춤은 매우 정교하게 기획된 춤이다. 조금만 연습하면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로 빠르게 만족감을 주고 길이도 노래 한 곡에 똑 떨어져 빠르게 소비할 수 있다. ‘칼군무’, ‘센터’ 같은 개념은 화려한 춤 안에 위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위계란 가장 잘 추는 사람을 중심에 세워 같이 춤추는 사람끼리 경쟁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잘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처음과 끝을 맞추어야 하는 춤은 포장이 잘된 상품이다. 주도적으로 춤을 즐기는 것 같지만 진열장에 놓인 상품을 고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춤을 출수록 새로운 춤을 바라게 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살찌운다.

방송 댄스 이전에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춤은 사교댄스이다. 아관파천 때 고종이 러시아 공사 부인에게서 왈츠를 배운 것이 사교댄스의 시작이다. 1920년대 들어 유학생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일반으로 확대되었는데 1937년 극작가 이서구를 비롯해 기생 여급 배우 등이 조선총독부에 탄원하는 형식의 글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를 잡지 ‘삼천리’에 싣는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끝까지 댄스홀 설립을 금지했다. 자유롭게 춤추면서 느낄 잠깐의 해방감마저 억압한 것이다. 사교댄스는 해방을 맞아 미군을 통해 우리와 다시 만났고 1950년대 급속하게 전국으로 퍼졌다. 일제 강점기에 억눌렸던 정서와 한국 전쟁이 남긴 두려움과 상실감으로 황폐해진 심신을 춤으로나마 달래려 했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1954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 때문에 사교댄스는 여성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는 매개체로 인식된다. 소설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사교댄스에 대한 비판과 단속이 강화되었다. 이렇게 춤으로 소란을 겪은 우리 사회는 긴 독재를 거치면서 춤에 깃든 자유 정신이 하나씩 거세된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 문화재 지정 사업으로 많은 민속춤을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공동체의 삶과 놀이로서의 맥락을 탈락시켰다. 민속춤은 전통이란 이름으로 적당히 과거에 의지하면서 위계와 권위를 공고히 하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열린 춤이 아직 남아있다. 춤으로 부르는 것도 마뜩잖아서 ‘거친, 품질이 낮은, 아무렇게나 생긴’ 등의 뜻을 가진 접두사 ‘막’을 붙여 막춤으로 부른다. 정해진 형식도 없고 누구나 안무하면서 출 수 있어 자족적인 춤이다. 모든 곳 모든 시간에 존재하고 춤추는 동안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다. 이런 막춤이야말로 환대의 춤이 될 만하다. 환대는 타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막춤에는 이런 환대의 정신이 들어있다. 같이 춤추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따지지 않고 보는 사람이 어떤 평가를 해도 개의치 않는다. 아무리 강력한 위계도 힘을 잃어버리는 몸짓으로 주인과 손님의 구별을 없애는 춤이다. 모든 춤은 근본적으로 중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중력은 물리적 중력만이 아니다. 억압하고 차별하고 배제하고 소외를 부추기는 모든 외부의 시도와 그것에 굴복하고 인정하려는 마음마저 모두 중력이다. 막춤의 정신과 태도에는 환대가 담겨있다. 함께 막춤을 추는 일은 모든 중력에 굴복하지 않고 타자를 환대하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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