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기는 폭탄을 투하해 상대 진영에 타격을 줄 목적으로 개발된 항공기다. 2차대전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다. 무인기까지 등장한 21세기에는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쏘아 정밀 타격이 가능한 세상이다.
한때 스포츠 세계에서 출중한 기량의 선수에게 ‘폭격기’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1937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뒤 12년간 타이틀 방어 25회(23회는 KO승)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미국 흑인 권투선수 조 루이스는 ‘갈색 폭격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차범근도 11년 동안 독일 분데스리가 1부 리그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된 위르겐 클린스만(59)은 ‘금발의 폭격기’로 불린 전설의 공격수다. 1994년 아나톨리 비쇼베츠(러시아) 감독을 시작으로 9번째 대표팀 외국인 사령탑에 오른 클리스만은 ‘이름 값’으로는 역대 최고다. 독일 국가대표로 108경기에 출전해 47골을 터트렸다. 유럽 명문 클럽 활동도 화려하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3골을 넣고 당시 서독의 우승을 이끌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때는 한국과 조별리그 경기에 나서 골망을 두 번 흔들면서 독일의 3-2 승리를 주도, 우리나라에 ‘금발의 폭격기’ 이미지를 강렬하게 새겼다. 감독으로서 성과도 뚜렷하다. 2004년부터 독일 대표팀을 맡아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3위의 성적을 냈다. 미국 대표팀에서는 2013년 북중미골드컵 우승, 2014 브라질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궜다.
대표팀 감독 후보 물망에 오른 61명 중 커리어만 따진다면 클린스만은 자격이 차고 넘친다. 그래도 논란은 있기 마련이다. 클리스만은 2020년 독일 클럽 헤르타 베를린을 맡은 뒤 77일 만에 사퇴하고 야인으로 지냈다. 그의 3년 감독 공백기에 현대축구는 발전을 거듭했다. 전술 역량 등에 우려의 시선을 던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표팀 외국인 감독 중 성공한 인물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거스 히팅크와 2022년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의 파울루 벤투 정도다. 이들도 뒷말이 무성했다. 결국 성적으로 아름다운 끝 맺음을 했다. 클린스만은 오는 24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데뷔해 2026년 북중미월드컵까지 대표팀을 이끈다. ‘이름 값’과 성적은 별개다. 완전 새 유형의 ‘폭격기’로 한국 축구사에 금빛 찬란한 족적을 새기길 바란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