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는 많은 ‘스포츠 영웅’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미국)나 ‘축구황제’ 펠레(브라질)는 물론, ‘살아 있는 영웅’도 많다. 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스포츠 스타’들과 달리 이들이 영웅 반열에 오른 것은 선수 시절 본인들이 이룬 업적과 스토리가 다른 스타들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웅은 업적 만으로는 탄생할 수 없다. ‘영웅 만들기’가 더해져야 한다. 미국 등 스포츠 선진국들은 자국 스타들의 영웅 만들기에 열중, 각종 사업을 통해 전 세계로부터 추앙받는 영웅으로 탄생시켰다.
하지만 한국은 영웅 만들기에 인색하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마라톤)나 ‘수영 영웅’ 박태환 등은 우리에게는 영웅일지 몰라도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그저 숱한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일 뿐이다. 우리 스스로가 그들을 기리고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때문이다.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부산이 낳은 최고의 스포츠 영웅으로 양정모 희망나무 커뮤니티 이사장을 꼽을 수 있다. 양 이사장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이가 바로 그다. 당시 느낀 국민의 감격은 건국 이후 최고였다. 양 이사장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박정희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한국체대 설립으로 이어졌을 정도다. 이 같은 사실 만으로도 그는 스포츠 영웅으로 추앙받기에 충분하다.
부산 사람에게 양 이사장은 더 특별한 존재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는 물론 대학(동아대)까지 졸업한 그는 평생 레슬링인으로 살며 후배 양성을 위해 힘썼다. 지난달에는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진품을 부산시체육회가 운영하는 부산국제대회기념관에 기증, 많은 시민이 볼 수 있도록 하면서 다시 한번 ‘부산 사랑’을 표현했다.
이런 양 이사장의 업적을 기린 공간이 있다.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 인근에 있는 부산시 종합실내훈련장이 그곳이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양정모 금메달 획득 기념 종합실내훈련장’이다. 여기서는 ‘제2의 양정모’를 꿈꾸는 레슬링 선수와 검도 복싱 유도 태권도 등 투기 종목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일반 시민은 물론 투기 종목을 제외한 체육인들에게조차 생소한 공간이다. 더욱이 양 이사장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기념해 조성된 공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양정모 훈련장’에 대한 홍보도, 지원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1987년 건립된 양정모 훈련장은 무관심 속에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곳곳이 낡고 병들어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타지에서 전지훈련을 온 선수들이 머물 합숙소는 폐쇄된 지 오래다. 대구의 경우 각 종목 훈련장과 부대시설, 합숙소가 있는 ‘대구스포츠단 훈련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인천과 광주에는 이 같은 시설이 3곳이나 있는 것에 비춰보면 부산의 현주소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양 이사장을 제대로 대접하고 기려야 한다는 지역 체육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부산시는 2017년 ‘체육발전 종합계획’을 통해 이곳에 새로운 종합훈련장을 짓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2021년까지 20개 종목의 실내외 훈련장과 합숙시설, 부대시설 등이 포함된 ‘(가칭) 부산종합선수촌’을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산난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계획을 수립한 지 6년째 전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부산은 2025년 제106회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한다. 부산의 체육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양 이사장이 대한민국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딴 지 50년 차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부산을 찾는 전국의 체육인들에게 낡고 초라해진 양정모 훈련장을 보여줄 순 없지 않나.
당장 추진이 어렵다면 2년 뒤 ‘양정모 선수촌’의 첫 삽이라도 떠야 하지 않을까. 다시금 양정모를 기리고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탄생시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병욱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