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계박람회(엑스포) 실사단이 오늘부터 사흘간 부산에서 현지 실사에 돌입한다. 국제박람회기구(BIE) 행정예산위원회 위원장이 단장인 실사단은 BIE 사무총장을 비롯해 대륙별로 안배된 위원들로 구성됐다. 실사단이 후보지 가운데 제일 먼저 들렀던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던 발언은 경쟁 도시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겉으로 알려진 것 외에 보다 구체적인 실사단 정보와 실사 포인트가 있을지 이 칼럼을 쓰기 전 재미 삼아 챗GPT에게 물어봤다. 여러 답변 가운데 기억 남는 건 이 한 문장이다. “실사단은 객관적인 데이터로 평가한다.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오사카시의 유메시마는 2년 앞으로 다가온 2025엑스포 개최지다. 오사카만에 위치한 이 인공섬은 원래 허허벌판이었으나 지금은 전시장 공사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일본 제2도시인 오사카는 여러 모로 부산과 닮았다. 관동지방의 수도 도쿄에 맞서는 관서지방의 중심이자 최대 항구도시인 점부터 그렇다. 하지만 한때 300만 명이 넘던 인구가 260만 명 대로 감소할 만큼 오사카에도 쇠락의 기운이 감돈다. 오사카가 2025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됐을 때 현지 주민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역사의 반전을 엑스포에서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는 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사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경제가 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무렵인 1970년 도쿄를 제치고 아시아 최초로 엑스포를 주최한 도시다. 오사카에 있어 엑스포는 성장과 번영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당시 세워진 상징 조형물인 ‘태양의 탑’은 아직도 많은 관광객을 모은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상위권 국가 중에서 5년 주기의 등록엑스포를 한번도 열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1993년 대전엑스포나 2012년 여수엑스포는 급이 낮은 인정엑스포였기에 한국이 본격적인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세계 번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언명하기 위해서는 등록엑스포 유치가 필수적인 절차다. 부산은 누가 뭐래도 한반도의 관문이요, 태평양과 유라시아대륙의 관문이다. 한국의 첫 번째 등록엑스포에 서울보다 부산이 앞서 도전장을 내민 건 그래서 의미가 적지 않다.
실사단이 부산에서 둘러볼 엑스포 예정 부지인 북항(부산항)엔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식민지 시기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관부연락선이 여기서 출발했고, 일제가 수탈한 물자를 여기서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6·25 전쟁이 터지자 한국을 돕기 위해 전세계에서 모인 유엔군이 처음 발을 디딘 곳도, 베트남전쟁 때 청룡부대가 눈물의 작별을 고한 곳도 부산항이다. 그렇다고 식민지 설움과 전쟁 상흔만 가득한 건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참치잡이 원양어선 지남호가 만선의 꿈을 안고 닻을 올린 기억과,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산업화 시기 대한민국 수출의 전진기지라는 자부심이 새겨진 곳 역시 부산항이다.
부산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몸부림치는 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동남권의 부산이 서울과 함께 한반도 두 개의 축으로 제 구실을 해야만 나라에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부산이 잃어버린 30년은 서해안의 시대였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여기에 면한 인천의 부상은 필연적이었다. 경제대국 일본과 미국을 바라보는 태평양 시대에 부산이 중심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그 흐름은 다시 변곡점에 들어서고 있다. 중국은 수교 이후 거의 줄곧 우리나라 무역의 최대 흑자국이었지만 올해부터는 최대 적자국으로 돌아설 전망이다. 신냉전의 기류 속에 중국을 향한 경각심도 커지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고 돌아 다시 한번 환태평양의 시대가 열리려는 참이다.
이제 모든 시계는 2030년에 맞춰졌다. 가덕신공항은 20년 반복된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엑스포 이전인 2029년 개항을 목표로 돌진하고 있다. 가덕도에서 북항까지 몇십분 내 이동이 가능한 교통 인프라 확충도 때에 맞게 계획되어 있다. 북항은 영욕이 서린 항구로서 기능은 모두 부산신항에 양보하고 재개발을 통해 슬리퍼 바람으로 어슬렁거릴 수 있는 친수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아마도 외국인들은 지하철에서 내리자 마자 바다를 볼 수 있는 대도시를 처음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부산이 엑스포 개최를 준비하기 시작한 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부산은 2002년 한일월드컵과 아시안게임,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주최하면서 국제행사 노하우를 충분히 쌓았다. 88서울올림픽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앞당겼듯 2030엑스포는 4만, 5만 달러 시대의 발판이 될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군 대한민국, 그 역사의 첨병이었던 부산이 지금 선택받을 준비를 마쳤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