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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인생과 예술의 길이

  • 강필희 기자 flute@kookje.co.kr
  •  |   입력 : 2023-04-05 19:56:4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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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네마 천국’ 후반부로 가면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영화관 철거 장면이 나온다. 힘없이 허물어지는 콘크리트 더미와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주민들 표정이 교차하는데, 오랜 세월 영화를 보며 울고 웃는 사이 건물은 낡고 사람들은 늙어갔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다. 특히 삭제된 키스 장면만 따로 모은 필름에서 남녀배우들은 주인공 토토가 어렸을 때나 백발이 성성한 영화감독으로 성장했을 때나 똑같이 젊고 아름답다.

16~18세기 영미문학에서 유행한 시의 한 장르가 소네트다. 우리나라 시조 쯤에 해당하는데, 소네트 작가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총 154개 작품을 남긴 셰익스피어다. ‘작은 노래’라는 뜻을 가져 얼핏 자연을 찬미하고 사랑의 기쁨을 외친 것 같지만, 셰익스피어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주제는 인생의 유한함과 예술의 영원성이다. ‘시간은 청춘에 드리워진 화려한 치장물을 걷어가 버리고 미인의 이마에 주름 고랑을 패게 하지만…나의 시구는…다가올 미래에 버티고 서 있을 것이다’(소네트 60번).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도 언젠간 추해지지만 예술은 영속한다는 노래다.

‘아르스 롱가 비타 브레비스(Ars longa, vita brevis)’. 최근 영면에 든 일본 출신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웹사이트가 부고를 알리며 띄운 공지문 일부이다. 번역하면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이다. 원래 히포크라테스가 했다고 전해지는 이 말을 류이치가 생전에 좋아했다는 설명까지 붙였다. 류이치는 영화 ‘마지막 황제’ 주제곡으로 아시아인 최초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영화음악의 거장이다. 전자음악부터 클래식까지 스펙트럼이 넓어 국내 여러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고 팬들에게 위안을 건넸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던 해엔 그의 피아노 연주가 영화제 개막식을 장식했다.

TV 케이블채널을 돌리다 보면 영화나 드라마, 가요 프로그램에서 이미 고인이 된 배우나 가수들이 생전 활발하게 활동하던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올 들어서만 ‘노틀담의 곱추’에서 비극적인 관능미를 발산했던 이탈리아 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세상을 떴고, 한국 여배우의 계보를 잇는 윤정희가 알츠하이머 투병 끝에 사망했다. 바로 엊그제는 한국 대중가요를 대표하는 현미가 별세했다. 활동 장르나 범위, 영향력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같이 대중이 아낀 예술가였다. 그들이 남긴 영화 음악 노래 문학만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빛나고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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