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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사라지는 전세살이

  • 강춘진 기자 choonjin@kookje.co.kr
  •  |   입력 : 2023-04-23 19:05:50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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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는 주택가격의 일부를 보증금으로 맡기고 남의 집을 빌린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맡긴 돈을 전액 돌려받고 나가는 형태다. 집 주인에게 세입자가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셈이다. 대신 집 주인은 세입자에게 본인 소유의 집에 일정 기간 들어가 살게 해준다. 현금과 현물의 한시적인 맞교환으로 상호 채권·채무 관계가 된다.

전세제도 기원은 1876년 강화도조약 당시로 거슬러간다. 부산을 비롯해 인천과 원산 등 3개 항구 개항에 따른 일본인 거류지가 조성되던 시기다. 농촌 사람 이동 등으로 도시 인구도 늘었다. 보증금을 내고 살 집을 빌리는 임대차 관계가 생겼다. 전세 기간은 통상 1년으로, 가격은 집값의 반 정도로 형성됐다고 한다. 이후 6·25전쟁기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주택난이 심화한 1970년대 사회 구조에 따라 전세제도가 관행적으로 자리 잡았다. 집 있는 사람과 집 살 능력이 부족한 사람 간에 서로 이익이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영어사전에서도 따로 번역하지 않고 ‘Jeonse(전세권)’라고 할 정도로 독특한 계약 방식이다.

임대인은 집 살 때 부족한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 뿐더러, 사업자금으로 사용하거나 금융기관에 맡겨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주거 문제를 일시 해결하고, 전세금은 강제 저축수단이 됐다. 나중에 내 집 마련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안전 자산이었던 것이다. 집 주인과 세 사는 사람 모두에게 장점이 있는 거래 관행이다.

사실 전세살이는 고달팠다. 1년마다 다시 살 집을 구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89년 노태우 정부가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전세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이유다. 하지만 전세금이 폭등하는 결과를 낳았다. 1990년대 들어 전셋값이 30% 가까이 오르고 거주지를 잃은 세입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등 이른바 ‘전세파동’이 일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뒤 은행 이자율마저 낮아지자 집 주인들이 전세금을 ‘보증금 일부’, ‘월세 일부’로 환산하는 형태를 선호하는 등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 뒤 집값이 떨어지는 데 반해 전세금은 급등한 이른바 ‘깡통전세’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전세금 회수에 고심하는 세입자가 늘었다.

어느새 집 주인이 전세보다는 매달 임대수익이 보장되는 월세를 선호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최근에는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세입자들도 월세를 원하는 분위기다. 전세살이 애환도 언젠가는 역사 속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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