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거짓말이 어느새 능력이 된 사회

목숨 같은 전세금 떼먹고 뻔뻔…윗물부터 폐수 죄책감 못느껴

신뢰 무너진 공동체 오래 못가, 법원은 사기죄에 더 분노해야

  • 강필희 기자 flute@kookje.co.kr
  •  |   입력 : 2023-05-01 20:02:33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일선 경찰들이 가장 ‘무식한’ 범죄로 꼽는 게 택시강도다. 시작은 돈 좀 훔치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을지라도 기사를 위협하는 과정에서 무력이나 흉기 사용은 필연적이다. 몸싸움을 하다 보면 상해나 살인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그렇게 해서 얻는 건 고작 몇만 원이다. 은행 앞에서 기다리다 수백만 원 돈봉투를 덮친 소매치기범에 비하면 죄는 무겁고 수익(?)은 턱없이 낮다. “범죄도 머리가 좋아야 된다”는 말이 우스개만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세사기는 ‘저위험 고수익’의 전형이다. 대출로 빌라나 오피스텔을 신축하거나 매입한 다음 세입자를 모집한다. 이들의 전세보증금을 종잣돈 삼아 수십, 수백 채를 더 사들인다. 내돈 한푼 안 들이고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가 되고, 막대한 임대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경기 안산에서 ‘빌라의 신’으로 통하던 40대 일당이 이런 방식으로 돌려 막기 한 빌라는 무려 3000채가 넘는다. 하지만 1심에서 받은 형량은 징역 5~8년이다. 그나마 검찰 구형량보다 늘어난 게 이 정도다. 수원의 60대는 세입자 400여 명에게서 보증금 250여억 원을 가로챘는데 1심에서 징역 9년이 나왔다. 비싼 변호사를 동원하면 2심 형량은 더 줄어들 게 뻔하다. 재판을 봐야겠지만 임차인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건축왕이나 부산 오피스텔왕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기죄는 법정형이 낮은데다 가중처벌 규정이 있어도 한계가 뚜렷하다. 10년형에 5년을 더해봤자 15년이 최고다. 피해자가 7만여 명, 피해액은 5조 원 가까웠던 조희팔 사건에서 공범들이 받은 죗값은 징역 1~10년에 그쳤고,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도 있었다. 자살한 피해자만 수십 명인데도 결론은 이리 허무하다. 미국에선 최고형 자체가 높고 개별 범죄 형량을 합산하기 때문에 수백년형 선고가 낯설지 않다. 원망과 자책으로 시름시름 말라가는 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은 대를 이어 내림하기 일쑤인데, 정작 범죄자들은 교도소에서 몇년 썩다 나와 은닉해둔 자산으로 떵떵거리고 산다. 경제범죄나 사기가 다른 범죄에 비해 재범률이 유독 높은 이유다.

온갖 사기에 이골 난 국민이지만 이번 전세사기에 더 분노하는 건 가해자가 우리 곁에 있는 보통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는 중개물의 권리관계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고 그것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악질 사기범의 손발이 되어 깡통전세 위험을 알면서도 세입자를 속였다. 신혼 부부, 사회 초년생, 취업 준비생, 카페 주인이 그렇게 당했다. 설마 사람이 목숨을 버릴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 앞에서 계약서 도장을 찍는 이들이 몇 달 안 가 살던 집에서 쫓겨날 수 있는 개연성은 인식했을 게 분명하다. 눈 앞의 이익에 양심도, 최소한의 직업 윤리도 내팽개친 것이다.

공자는 나라를 지키는 3대 요소로 병(兵) 식(食) 신(信)을 꼽았다. 이중에 버려야 할 게 있다면 맨 처음이 ‘병’(군사력)이고 다음은 ‘식’(경제력)이라고 했다. 가장 마지막까지 끌어 안고 있어야 할 가치는 ‘신’(믿음)이었다. 그게 없으면 공동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진부할 만큼 많이 인용된 2500년 전 고대 사상가의 말이 적확하게 조응되는 우리 현실이 기막히다. 새빨간 거짓말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해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다. ‘저 정도 인사가 거짓말 할까’ 하는 선량한 믿음을 여지없이 배신하는 일이 전세사기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온·오프라인에서 넘쳐나는 가짜뉴스가 그 단면이고, ‘거짓말 면허’라도 가진 듯 예사로 거짓 선동을 해대는 정치인들이 그 증거다. 도의도 염치도 없는 사람들이 거짓을 발판 삼아 명성을 얻고 승승장구하니 평범한 국민마저 여간해선 죄책감을 못 느낀다. 부동산 임대차 시장 왜곡의 근본 원인은 정부 정책의 패착이지만 우리가 더 좌절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지난해 말 대검찰청이 펴낸 보고서를 보면 10년 전과 비교해 절도 강도 살인 등 대부분의 범죄가 줄었는데 성범죄와 함께 사기만 늘었다. 거짓말 폐수가 온 사회를 휘감아 돌게 된 데는 가해자에게 관대한 법원 책임도 있다. 어떤 이에게 1억 원은 명품백 하나 값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목숨이다. 제 부모 형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기범이 그렇게 챙긴 돈으로 떠르르한 변호사나 로펌의 조력을 받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때 유족의 피눈물은 누가 씻어주겠는가. 이제는 사기 형량 강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피해자 규모와 지위, 피해 액수, 사회적 파장을 좀 더 엄정하게 따져야 한다. 거짓과 위선이 능력으로 치부되는 사회가 온존하게 유지된다면 그게 기적일 것이다. ‘검사는 정의의 편, 판사는 진실의 편’이라는 법언이 있다. 진실을 허무는 거짓에 법원이 더 분노해야 한다.

강필희 논설위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2. 2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3. 3'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4. 4[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5. 5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6. 6'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7. 7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8. 8[속보] 트럼프 “UFC 회장에 백악관 대변인 제안, 광기 어린 좌파로부터 우리 지켜야”
  9. 9양산 주남산단, 자금 조달 지연에 2028년까지 연장
  10. 10정풍송 노래비 건립 재추진 움직임에 밀양시의회 “반대”
  1. 1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2. 2오세훈, 증시 폭락 직격... “국민연금으로 지방 선거용 주식도박"
  3. 3[속보]이용철 법무장관 후보, 청문 준비 돌입…12일 준비단 첫 출근
  4. 4장동혁 “중도확장, 말로하는 연대·통합으로 되는 것 아냐”
  5. 5서영교 “조작기소 특검법안 ‘대통령 이해충돌’ 논란은 헛소리”
  6. 6임광현 “소방재원 확보 위해 미래대응기금 활용, 국회와 긴밀 협의”
  7. 7[속보]당정 “소방 필수투자에 2조원 재정지원…지방부담 완화 검토”
  8. 8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9. 9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10. 10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1. 1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2. 2'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3. 3'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4. 4“평소 접하기가 힘들었던 전통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르세요”
  5. 5녹색전환 핵심 ‘전기화’, 기업10곳 중 3곳만…“인센티브 필요”
  6. 6올해 3분기 상용직 증가분 75%는 60세 이상…20·30대는 감소
  7. 7식품·외식 분야에서 ‘웰니스 소비’ 앞으로도 지속된다
  8. 8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9일 개막…"K-GX 전략 소개"
  9. 91249회 로또복권 1등 14명…당첨금 20억2505만 원
  10. 10[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1. 1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2. 2[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3. 3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4. 4양산 주남산단, 자금 조달 지연에 2028년까지 연장
  5. 5정풍송 노래비 건립 재추진 움직임에 밀양시의회 “반대”
  6. 6부산서 부탄가스 난로 폭발 사고... 2명 화상
  7. 7[속보] 검찰총장 인선 절차 연기... 후보 추천위 이달 중 개최 예정
  8. 81월부터 공석 김해공항장, 내정자도 없어… 이유 물어도 ‘답변거부’
  9. 91월부터 공석 김해공항장, 내정자도 없어… 이유 물어도 ‘답변거부’
  10. 10금관가야 왕도 김해, 내년 '고도' 지정 도전
  1. 1‘승률 98.6%’ 배드민턴 안세영,사상 첫 2시즌 연속 11승
  2. 2삼성,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 탈환…통산 9번째 우승
  3. 3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4. 4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5. 5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6. 6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7. 7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8. 8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9. 9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10. 10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지방의회 아래 선출직 주민의회…술집 개업 등 찬반 권한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살아남는 것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기고 [전체보기]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초등 입학생 30만 붕괴
공공재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감기약을 먹어도 감기가 낫지 않는 이유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북항 돔 아레나, BPA·부산시 대승적 결단 필요하다
위헌 소지 조작기소특검법…역풍 피할 수 있나
세상읽기 [전체보기]
동맹 속의 자율성, 핵자강과 전작권의 미래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오래된 건축이 만드는 새로운 연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양달석의 ‘목동’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