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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과학기술 정책, 안녕하십니까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  |   입력 : 2023-05-08 19:29:3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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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부와 차별화되는 연구개발의 비전과 철학은 무엇입니까?’ ‘포화 상태에 이른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분할 대책은 있습니까?’ ‘기후 위기에 대한 해법은 무엇입니까?’ ‘환경을 고려한 에너지 정책은 마련되셨는지요?’ ‘지방 소멸 시대를 맞아 비수도권의 과학기술 진흥 방안은 무엇입니까?’ ‘인공지능이 윤리적으로 사용되기 위한 정책과 필요한 교육은 무엇입니까?’ ‘과학기술 연구 결과가 공공에 더 신뢰받는 지식으로 활용될 방안은 마련되었습니까?’ ‘기초과학의 토대를 마련할 정책은 무엇입니까?’ ‘소수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하도록 돕는 방안이 있습니까?’

20대 대통령 선거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2022년 초, 과학계에서 대통령 후보들에게 쏟아냈던 질문들이다. 지금 읽어봐도 머리가 무거워지는데, 해답을 제시해야 했던 후보 진영에서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리라 본다. 각 정당과 후보가 나름대로 답을 한 것도 있고, 비중 있게 다루지 못하고 넘어간 것도 있다. 달콤하고 화려한 약속의 시간이 지나고 현실적인 결정과 실행의 시간이 되었으니, 다시 한번 이 질문들을 꺼내 볼 만하다.

과학계에서 내놓았으니 과학에 한정된 질문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다 다룰 수 있는 사안들은 아니다. 어림잡아 봐도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교육부 외교부 기획재정부 등이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의제와 관련돼 있다. 그러니까 18개 부 어느 곳도 과학기술을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외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과학기술은 단지 ‘생산성 향상을 통한 소득증대’의 수단으로 정의될 수 없으며, ‘잘살아 보자’라는 운동의 구호도 아니다. 과학기술은 사회 구성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잘 살아내는 일에 필요한 바탕이기 때문이다.

질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명쾌한 해답을 쉽게 도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하고, 세계관과 이념이 부딪히기도 하고, 복잡한 현안들과 얽혀 있기도 한 문제들이다. 가치와 철학을 함께 논해야 하는 사안들이다. 모든 과학자가 차별받지 않고 연구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대통령도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키우고 싶다면 더 민감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여성과 젊은 비정규직 연구자들이 겪는 현장에서의 차별과 배제는 구조적인 문제인가, 개인적인 불운인가. 대통령을 위한 과학 질문은 곧 젠더 질문이나 노동 질문과 맞물려 있다.

질문들은 이제는 한국의 과학기술을 ‘추격’, ‘선도’와 같은 국제 경쟁 구도로만 다룰 수 없음을 시사한다. 과학기술은 다른 나라를 제치고 패권을 잡아야 하는 ‘경쟁 종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 위기 에너지 우주탐사 환경 등의 과학기술 의제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는 인류가 어떻게 ‘생존’해 나갈 것인지를 모색하는 문제다. 한국도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국제적 흐름에 동참할 때다. 글로벌 혁신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한 ‘과학기술외교’에 대한 요청이 높다. 과학기술이 제기하는 문명 도전 측면에 대한 인식이 뒷전으로 밀린 채 상대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술 발전의 좌표가 설정된다면, 기술경쟁의 최후 승자는 특정 국가가 아닌 인간을 밀어낸 기술,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고민거리가 많을 대통령에게 굳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과학기술 의제가 과학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과학기술 전담 부처의 업무로만 간주하고 여성 노동 환경 기후 등 다른 주요 의제와 분리한다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 과학기술은 국정과 민생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으며, 과학기술을 매개로 한국 사회는 지구라는 공동체와 연결된다.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국정 운영이란 바로 이런 관계를 이해하고 더 나은 관계를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적절한 거버넌스의 마련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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