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축제의 계절임을 새삼 느낀다. 코로나19사태 이후 움츠렸던 축제 열기가 전국적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난 21일 부산 동구도서관 책마루전망대에서 열린 ‘산북(BOOK)도로 콘서트’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보지 않는 책을 기증하고 강연과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행사였다. 부산축제조직위원회가 지난 20일과 21일 마련한 골목축제 ‘부산 고 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하나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차에서 내려서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산복도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까 싶었다.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친구 연인 가족 등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책마루전망대에서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날 강연은 작고 오래된 식당을 발굴하고 여행의 참맛을 소개하는 노중훈 작가가 ‘원도심의 맛’을 주제로 진행했다. 이후 땅거미가 내려앉는 가운데 감성적인 음악이 울려 퍼지자 참가자들은 “이곳이 야경 맛집”이라며 흥분했다. 행사는 시민이 증산공원과 산복도로 일대를 걷고 이야기를 나누는 ‘오싹하고, 달빛과 함께야’라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마무리됐다.
산복도로의 사전적 의미는 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다. 개항기 때 일자리를 찾아온 외지인과 한국전쟁 시절 피란민이 몰리면서 산 비탈길에 판잣집이 생기고 산동네가 형성됐다. 산복도로는 부산의 과거와 현재가 살아 숨쉬는 역사공간인 셈이다. 산복도로는 다른 지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관광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래서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산복도로를 찾아다니는 투어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이다. 산복도로 맛집과 커피숍을 방문해 SNS(사회관계망)에 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좁고 가파른 골목이 많은 것도 부산의 지형적 특성이다. 산복도로와 골목길에는 시민의 일상이 녹아 있어 정겹다. 축제조직위가 해마다 중·동·영도구 등 원도심에서 골목축제를 여는 이유다.
산복도로와 골목뿐만 아니다. 부산하면 떠올리는 항만도 축제의 공간이 된다. 부산항과 바다를 주제로 한 ‘부산항축제’가 오는 27일과 28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과 영도 아미르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부산항은 세계 2위 환적항이자 세계 7위 컨테이너항이다. 이런 부산항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알리기 위해 부산시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부산항만공사가 여는 축제다. 지난 15년간 열렸는데 그동안 부산항만의 특색을 제대로 살렸는지는 의문스럽다. 화려한 불꽃축제와 가면무도회, 맥주축제 등 주요 프로그램이 다른 축제와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행사를 기획하는 축제조직위는 고민 끝에 올해 행사를 부산항을 중심으로 교육과 체험·놀이가 결합된 에듀테인먼트형 축제, 시민 친화형 문화축제로 확 바꿨다. 우선 물류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컨테이너를 적극 활용한다. 부산 부두에 가 보면 컨테이너 박스들이 빼곡히 쌓여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만큼 컨테이너는 물류·항만 도시가 지닌 특색과 부산 시민이 생활하는 모습을 잘 반영한다. 또 독일 네덜란드 중국 영국 인도 등 부산의 자매항구가 있는 국가에 시민이 관심을 가지도록 국가별 테마를 담은 ‘글로벌 포트파크’를 신설했다.
부산항 제1부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의 군수물자 거점으로 활용됐고 수많은 피란민이 ‘자유의 땅’ 부산에 도착해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한국전쟁으로 좌절을 겪고 이를 이겨낸 대한민국의 의지가 살아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주최 측이 부산항을 소개하는 전시·체험관 ‘부산포트관’을 운영하기로 한 것은 부산항축제의 개최 목적과 어울리는 결정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행사라면 시민이 더 크게 호응할 것이다.
올해 부산항축제는 북항 재개발 1단계 친수공원과 경관수로 등이 시민에게 완전히 개방되고 열리는 첫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약속처럼 126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온 공간에서 ‘시민이 슬리퍼를 신고 가도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열려 뜻 깊다.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서는 카약과 오리배 도넛보트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워터프론트 투어가 열린다. 물의 도시 이탈리아 베니스처럼 배를 타고 북항 일대를 누빌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예년처럼 부산 앞바다에는 새누리호와 자갈치 크루즈선도 운행돼 시민과 관광객이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영도 아미르공원에서는 해양항만 인프라 시설에 스토리를 입혀 게임하듯 즐기며 항만을 이해하는 미션 스탬프 투어도 진행된다.
그동안 부산에서는 많은 축제가 열렸으나 지역 특색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산을 상징하는 산복도로와 항만 등을 주제로 한 축제가 시민 참여형으로 자리 잡으면 중요한 관광 인프라가 될 것이다. 시민 친화형으로 변신했다는 부산항축제가 열리는 이번 주말을 기대한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