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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눈 오는 날

최아휘 아휘의 부엌 오너셰프

  • 최아휘 아휘의 부엌 오너셰프
  •  |   입력 : 2023-06-06 19:05:3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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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 그루, 장독대, 자전거. 1980년대 흔히 볼 수 있었던 평범한 가정집의 모습이다. 엄마 아빠 두 아이 그렇게 한 가족이 마루에 앉아 바깥 눈 내리는 밤 풍경을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2019년 새해를 맞으면서 한 은행에서 배포했던 달력에 실린 설종보 화가의 눈 오는 날이란 그림이다. 몇 해가 지나서도 그 12월의 달력 그림이 여태껏 집 식탁 위에 걸려 있는 건, 마음 한쪽에 응어리진 감정 하나가 그 그림을 붙들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가정에서 가스보일러를 쓰고 있지만, 1980년대 중·후반까지 집마다 작은 창고에 연탄을 한가득 쌓아 비축해 두고 혹한의 겨울을 버텨내던 시절이 있었다. 저녁 아궁이에 연탄을 일렬로 포개 불을 피워 두면 그나마 식구들이 따뜻이 잠들 수 있었다. 연탄이 식을 때를 아는 듯 중간에 홀로 어머니가 깨어 새 연탄을 가는 수고를 하는 덕에 말이다.

어머니는 어쩌다 집에 손님들이 올 때면 작은 연탄 화로를 마루 옆에 두고 연탄불을 피우셨다. 손수 손질하고 양념한 소불고기를 석쇠에 올려 연탄불에 뒤집어 가며 구울 때면 연기와 함께 기름지고 고소한 냄새가 골목 전체를 뒤덮었다.

그때만 해도 한 골목 안 이웃들은 서로 간 그 집에 수저가 몇 갠지, 커피잔은 어떤 걸 쓰는지 잘 알 정도로 왕래가 빈번하고 친했기에 누군가 어쩌다 고기 냄새를 피울 때도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다. 마루에 작은 상을 펴고 앉은 아버지와 손님은 어머니가 옆에서 구워내는 불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들이키며 그간의 세상사 시름을 같이 털어내는 것 같았다.

연기는 괴로웠지만, 옆에 쪼그려 앉아서 한 점 두 점 받아먹던 그 연탄 불고기 맛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싶었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같이 식사한 게 8년 전쯤의 일이다. 1990년대 IMF 때 운영하시던 사업체가 부도처리 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가정에 충실하기보다 계속해서 밖으로 겉돌기만 하던 아버지였다. 집에 찾아오던 빚쟁이들에 시달리며 가족들은 생활고를 꽤 겪어야 했다. 자가였던 집을 팔아 남의 집에서 살기를 시작했고, 가족들 모두 한동안 고생이 많았다. 고생이 컸기에 가족 구성원들 간 원망과 마음의 생채기가 쉽게 아물지 않았고, 가족 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동안 봉합되어 잘 지내나 싶었는데 8년 전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가족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았다. 지금은 모두가 각자 떨어져 살고 있다. 매달 용돈 정도를 보내드리고 있지만 부자간의 관계 회복은 요원하기만 하다.

가족 간 마음의 장벽은 오랜 시간을 거쳐 무겁고 견고하게 쌓이기도 하고, 더러는 부지불식간에 어떤 일이 도화선이 되어 기존에 없던 벽이 세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로 가족이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미워하는 것일까?

화가 나고 원망도 크지만, 정말로 이 속상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아닐는지. 나로 인해 얼마나 큰 상처 받았을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또 그로 인해 얼마나 마음을 다쳤을지를 헤아려 본다면, 시간은 좀 걸리고 어색하더라도 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비단 이게 우리 가족의 얘기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내게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나 있는 건지?” 나에게 묻듯 당신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생각보다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외국에 나가 있을 때, 아이였던 어린 나는 편지를 썼고 엽서도 보내곤 했다. 당신의 답장을 받았고 부자간의 애틋함도 있었다. 골목에서 야구 글러브를 끼고 공을 던지면 받아도 주고, 단둘이 바닷가에 가서 헤엄치고 고둥 잡고 라면 끓여 먹던 기억도 있다. 그때는 몰랐다. 가족이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이별할 수도 있다는 것을.

2019년 달력의 12월 그림 한 장을 몇 해가 지나서도 버리지 못하고 이따금 바라본다. 눈 내리는 밤. 가족들이 마루에 앉아 그 풍경을 행복하게 바라보는 그 그림을…. 어쩌면 내 마음이 그려본 추억 속의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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