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인공지능 시대, 예술가의 쓸모에 관한 단상

지휘자 부재 실험, 출판 등 인간 영역 창작 파고들어

세상을 향해 남다른 질문…아티스트 역할 유지 고대

이상헌 춤비평가·부산시립무용단운영위원

  • 이상헌 춤비평가·부산시립무용단운영위원
  •  |   입력 : 2023-06-07 19:24:16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예술가를 규정하기 간단하지 않지만, 보통 예술(창작)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말한다. 전업 예술가로 부르는 이들은 사회에 어떤 쓸모가 있을까. 이런 의문은 서구의 경우 기원전 고대부터 있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시인(지금의 시인과는 다르다)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시인이 이상적인 국가에서 쓸모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플라톤 이후 지금까지 쓸모를 의심하는 눈길에서 자유로운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만큼 세상은 유독 예술가에게 가혹했다. 고대 중세를 거쳐 19세기까지 예술가는 왕실 종교 귀족 같은 페이트런(후원자)의 요구와 구미를 맞추면서 살아갔다. 20세기에 들어서야 이름을 걸고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자신의 쓸모를 놓고 경쟁할 수 있게 됐지만, 형편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예술가의 쓸모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할 일이 일어났다. 인공지능 챗GPT가 집필하고 네이버 파파고가 번역한 책 한 권이 출간 하루 만에 8000여 부가 매진된 것이다. 시작부터 판매까지 일주일 걸렸다고 하니, 기획부터 출판까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일 년을 쉽게 넘기는 현실에서 놀라운 일이다. 작년 11월 말에 조용히 등장한 챗GPT가 불과 6, 7개월 만에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성장하면서 예술가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분야들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통해 예술가의 쓸모를 생각하게 하는 또 다른 예가 있다. 국립극장은 사람만 할 수 있다는 예술에서 기술의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의도로 연주회 ‘부재(不在)’를 기획했다. 6월 30일 공연 예정인 ‘부재’는 한국생산기술연구소가 개발한 안드로이드 로봇 ‘에버6’와 현재 부산시립교향악단 예술 감독인 최수열 지휘자가 각각 다른 곡을 지휘하고, 다시 같은 곡을 번갈아 지휘하는 공연이다. 예술에서 기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동시에 지휘자가 ‘부재’하는 무대를 통해 지휘자(예술가)의 역할과 존재 가치에 관해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예술가의 역할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 것인지를 예측하려는 ‘부재’의 실험에는 과학 기술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인간 언어를 쓰는 대화형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예술가의 쓸모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프로그램을 쓸 줄만 알면 누구나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카메라 없이 사진 이미지와 동영상과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시험 삼아 챗GPT에 본문의 특정 단락을 입력하고, 문장을 완성하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두루뭉술하고 일반적인 내용이었지만, 논리적 오류나 문법적으로 어색한 부분 없는 문장을 답으로 내어놓았다. 만약 사용자가 밝히지 않으면 인공지능이 만든 것과 예술가가 작업한 결과물을 쉽게 구별할 수 없을 것 같다. 글쓰기를 위해 자료를 참고하듯 인공지능을 보조도구로 이용할 수도 있고, 앞선 사례처럼 인공지능이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쓸 수도 있다. 가뜩이나 20세기 들어 창작자로서 예술가의 독보적인 지위가 위태로워졌는데,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예술가라는 명칭조차 의미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든다.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고, 쓸모를 창출해서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동안 불안정한 계약과 모욕적인 수준의 보수를 견디면서 힘들게 지켜왔던 예술가의 자부심이 많이 흔들리고 있지만, 어쩌면 이 시대가 예술가는 곧 창작자라는 독보적이지만 부담스러운 역할에서 자유로워질 기회를 줄 수도 있다. 끊이지 않았던 쓸모에 관한 논쟁과 도무지 걷힐 기미가 없는 의심 속에서도 ‘시대의 즉물적 탐욕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존재’로 자위하면서 견뎌 온 예술가는 갈수록 모호해지는 존재 가치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정도가 되어야 ‘예술가’로 인정하는 자본과 대중의 압박은 갈수록 심해지고, 환경 차별 전쟁 난민 동물권 등 저항해야 할 세상의 즉물적 탐욕으로 인한 문제는 커지기만 한다. 저항하는 존재로서 예술가로 살아가기도 너무나 힘겨운데, 가뜩이나 인공지능까지 예술 영역에 더 깊게 들어온다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일부는 지금처럼 창작 과정을 직접 주도해 결과를 창출하는 역할을 유지하겠지만, 예술의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질문자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인공지능은 질문(요구)에 의해 작동한다. 어떤 질문을 해야 인공지능이 예술적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들을지, 어떤 질문이 예술적 결과를 불러올지를 고민하는 존재 말이다. 그런데 예술가는 언제나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존재였다. 여태껏 예술가의 질문과 해석이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서였다면, 지금은 질문 자체에 방점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인공지능의 시대, 예술가의 쓸모는 질문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북항복합환승센터 3.3m 단차분쟁, 법원 조정안 확정
  2. 2산청 대원사계곡길, 3.5㎞에서 5㎞로 연장 개통
  3. 3김장철 앞두고 재룟값 희비… 주요 채소는 내렸으나 양념은 올라
  4. 4부산 울산 경남 오후부터 비…내일까지 10∼60㎜
  5. 5[속보] 부캉이 ‘북항살이’ 한 달째…누적 방문객 150만명 넘었다
  6. 6[속보]현대제철 당진공장, 협력업체 근로자 기계 끼여 숨져
  7. 7김민석 “임기 동안 부산 직할 각오…뿌리 안착 숙제”
  8. 8북울산역세권 개발 본격화
  9. 9'여론조사비 대납 혐의' 오세훈 2심 내주 선고
  10. 10IMF, 韓잠재성장률 2년 연속 상승 전망…40년 만에 처음
  1. 1김민석 “임기 동안 부산 직할 각오…뿌리 안착 숙제”
  2. 2추미애 “사과 바라니 사과한다” 발언에 국힘 “사퇴 바라시니 사퇴하라”
  3. 3[속보]김민석, 지역축제 중 무대인사 관련 사과…"불편 끼쳐 죄송”
  4. 4울주군의원 의정비 8.3% 인상
  5. 5李대통령 “‘국무회의 공개라 말 못한다’는 거짓말…이해 안 돼”
  6. 6국힘, 秋 ‘재정 빨대’ 발언 사과에 “‘사과 바라시니까’…끝까지 오만”
  7. 7李대통령, 부천 화재 순직 소방관 조문…“영원히 기억할 것”
  8. 8[속보] 추미애 '소방 재정 빨대' 발언 사과…“폄훼 의도 없어”
  9. 9김민석, '재정 빨대' 발언 사과... "추미애에게도 사과 요청했다"
  10. 10[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1. 1김장철 앞두고 재룟값 희비… 주요 채소는 내렸으나 양념은 올라
  2. 2IMF, 韓잠재성장률 2년 연속 상승 전망…40년 만에 처음
  3. 3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가덕도신공항 우선시공분 11월 초 착공 ‘흔들’
  4. 4[속보] ‘부캉이’ 오른쪽 지느러미 상처 관찰…출혈은 없어
  5. 5롯데 ‘러브 패밀리 페스티벌’ 부산서 첫 개최
  6. 6효성중공업, 창원 초고압차단기 신공장 준공…AI 전방수요 폭증 영향
  7. 7대미(對美) 무역수치 흑자 늘었는데, 트럼프 가만히 있을까?
  8. 8마카오 리조트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 영남권 공략 본격화
  9. 91246회 로또 1등 16명…당첨금 각 18억 8,103만 원씩
  10. 10"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1. 1북항복합환승센터 3.3m 단차분쟁, 법원 조정안 확정
  2. 2산청 대원사계곡길, 3.5㎞에서 5㎞로 연장 개통
  3. 3부산 울산 경남 오후부터 비…내일까지 10∼60㎜
  4. 4[속보] 부캉이 ‘북항살이’ 한 달째…누적 방문객 150만명 넘었다
  5. 5[속보]현대제철 당진공장, 협력업체 근로자 기계 끼여 숨져
  6. 6북울산역세권 개발 본격화
  7. 7'여론조사비 대납 혐의' 오세훈 2심 내주 선고
  8. 8아궁이 불 지핀 후 방치…김해 목조 단독주택서 불
  9. 9경남도, 3277억 규모 올해 마지막 추경 편성…8월 호우 복구 중점
  10. 10경남도, 159.8㎞ 이순신 승전길 글로벌 여행길 육성 '속도'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은정이라는 이름
다시 영화의 시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초대 중수청장, 내편 네편 아닌 국민편에 서라
지자체, 현수막 법 준수하고 실태부터 파악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