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한때 국내 농구의 ‘메카’로 통했다. 중앙고, 동아고 등 고교 팀은 전국 최강 전력을 뽐내며 김주성 주희정 추승균 등 숱한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했다. 프로농구(KBL)가 출범한 1997년 부산을 연고지로 삼은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당시 ‘허동택(허재 강동희 김유택) 트리오’를 앞세운 기아는 최강의 전력을 뽐냈고,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사직체육관이 ‘오빠부대’로 가득 찼다. 명실상부 ‘야구의 도시’ 부산이지만, 이때 만큼은 농구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러나 2001년 기아가 팀명을 ‘모비스’로 바꾸고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부산 농구는 잠시 침체기를 겪게 됐다. 제2의 도시에 국내 4대 프로 스포츠 중 하나인 농구팀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던 중 2003-2004시즌 KTF 매직윙스(현 kt 소닉붐)가 부산에 둥지를 틀면서 다시 프로농구팀이 생겼고, 2020-2021시즌까지 kt 소닉붐은 18년 동안 부산에서 홈 경기를 치렀다. 이 기간 기아 시절 만큼은 아니었어도 농구장을 찾는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2021년 6월 kt가 경기도 수원으로 연고지 이전을 전격 발표, 또다시 프로농구팀이 사라진 부산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박형준 시장은 연고지 이전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kt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난 여론은 들끓었다. 사태는 kt에 대한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이 과정에서 책임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랫동안 부산 팬들로부터 사랑받은 kt가 야반도주하듯 연고지를 옮겼다는 비난 만큼이나 부산시의 안이한 대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기업의 사정상 불가피하게 연고지를 옮겨야 했던 모비스와는 달리 kt의 경우 내부 사정에다 부산시와의 ‘협상’이 깨진 것이 부산을 떠난 주요 원인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당시 kt는 훈련장 마련과 경기장 사용료 인하 등을 요구하며 수 차례 면담을 요청했으나 시는 이를 묵살했다. 시는 kt의 연고지 이전 얘기가 나오고서야 급하게 방안 마련에 나섰지만 끝내 협상에 실패했다. 연고지 이전을 놓고 kt와 부산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이런 가운데 최근 ‘깜짝’ 소식이 들려왔다. 시가 남자 프로농구팀을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식을 접한 지역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유치 협상 대상이 프로리그 퇴출 위기에 몰린 고양 데이원 점퍼스이기 때문이다.
2022-2023시즌을 앞둔 지난해 5월 고양 오리온스를 인수해 탄생한 고양 데이원은 KBL에 내야 하는 가입금도 제때 납부하지 못하는 등 정상적인 구단 운영이 이뤄지지 못했다. 급기야 선수와 직원들의 월급까지 체불되면서 ‘문제 구단’으로 낙인 찍혀 KBL에서 퇴출될 위기다. 데이원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연고지 이전을 고려했고, 부산시와 접촉한 것이다. 시는 데이원의 재정난 타개를 위해 새로운 ‘네이밍 스폰서’로 지역 기업인 BNK금융그룹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데이원은 KBL이 요구한 각종 부채 해결 및 구단 운영 정상화 방안 마련 등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16일 열리는 KBL 임시총회에서 데이원이 제명될 가능성이 크다.
kt가 떠난 뒤 남자 프로농구팀이 사라진 상황에서 시가 어떻게든 새로운 팀을 유치하려고 애쓰는 것을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kt 이전의 원인으로 꼽히는 ‘안이한 대처’를 이번 기회를 통해 만회하고자 하는 생각도 컸을 터다.
그래도 이번 시도는 심히 우려스럽다. 유치 대상에 대한 정확하고 면밀한 검토 없이 무언가에 쫓기듯 성급하게 협상이 추진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성급하고 섣부른 계획 추진은 늘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데이원이 KBL에서 퇴출되거나 부산 이전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구단이 운영되지 못한다면 부산시의 시도는 지역 팬들에게 또다시 큰 상처를 안길 수밖에 없다. ‘농구 메카’ 부산의 팬들은 ‘부실 구단’이 아닌, 오랫동안 응원하고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명문 구단을 원한다는 점을 부산시가 명심해야 할 때다.
이병욱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