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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이별학교의 학생이 되어

  • 이해인 수녀·시인
  •  |   입력 : 2023-06-15 19:41:09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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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별학교

요즘 나는

이별학교의 학생이 된 것 같네

거의 매일 수도원 게시판에는

여러 종류의 부고가 붙어있으니

기도를 따라 하는 것도 숨이 찰 지경이네

잘 아는 이가 죽었을 때는

설움이 북받쳐 엎디어 울다가

정신 차리고 문득 거울을 보면

퉁퉁 부은 얼굴의 나

슬픔의 우물 속에만 빠져있진 말고

그래도 아직은 살아있는 다른 이를 위해서

본인 자신을 위해서

일상의 웃음을 찾아야 한다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네

이별은 나에게 매우 엄격한 인생학교의 선생님

욕심을 비우는 법을 용서를 망설이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우는 게 현명한 사랑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오늘도 나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네


이해인 수녀가 나무와 십자가 앞에서 묵상하고 있다. 김회림 제공
2. 며칠 전 두 수련수녀의 첫 서원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부산교구 어느 사제의 동생이 대전교구 사제인 게 문득 생각나 “그분도 잘 지내시겠지?” 했더니 옆에 있던 수녀가 “지난해 말에 돌아가신 걸 아직 모르시나 보네?” 했습니다.

요즘은 눈만 뜨면 세상 떠난 이들의 소식을 들으니 마음도 울적해서 이별학교의 학생이 된 심정으로 위와 같은 시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이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적은 우리들이야” “거의 매일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들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 한 사람을 위한 기도를 다 바치기도 전에 또 다른 소식이 기디리고 있으니 어쩜 좋담?”

나직이 주고받는 우리의 푸념이 허공을 떠다닙니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조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느 이모 수녀의 모습에도, 병환 중이던 부모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며칠간 장례식에 다녀온 수녀들의 얼굴에도 하얀 슬픔이 가득해 보입니다.

며칠 전에는 병원에 다녀오면서 차트에 적혀있는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검사 하러 채혈실에 들어가도, 엑스레이 찍으러 영상실에 들어가도 이름은? 생년월일은? 하고 묻습니다. 주민등록 앞자리를 불러주다가 도무지 실감나질 않는 내 실제 나이를 가늠해 보며 놀라곤 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이름과 생년월일을 재확인하는 것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병원이라는 학교를 자주 들락거리는 환자이지만, 이제는 ‘이별학교’에도 정식으로 등록한 학생이 되어 충실한 수업을 받고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 가족들과 생이별한 슬픔 속의 사람들을 더 많이 기억하게 되는 6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내가 있음을 다시 감사하게 되는 6월, 지금도 병상에서 힘겨운 투병으로 가족 친지들과의 이별을 조금씩 앞당겨 준비하는 고통 속의 환우들을 기도 속에 기억해 보는 오늘입니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었음을,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시간들의 첫 시간’임을 잊지 않으면서 겸허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두 손 모읍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호들갑스럽지 않고 담백하게 이별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인생의 이별학교는 우리에게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것, 삶의 유한성을 시시로 절감하며 지금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결국 많이 감사하고 자주 용서하라는 것, 잘 되지 않더라도 의식적으로 옆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사랑을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어느 날 찾아올 진짜 마지막 이별을 순하게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3.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곡을 다시 들어보는 이 아침.예전에 쓴 ‘이별연습’이라는 시 한편을 다시 읽어봅니다.

이별연습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고

좋은 생각을 잊어버리고

잃고 잊는 게 하도 많아

내가 나에게 놀라네

나이를 먹는 것은

이별을 위한 준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살짝 변명하며

빙그레 웃어보는 오늘

세월과 더불어 빛을 잃어도

힘들다고 슬프다고 한탄하지 않으면

은은한 환희심이 반달로 차오를 거라고

쓸쓸해도 자꾸만 웃음이 나올 거라고

창밖의 새들이 노래로 말을 하네

정원의 꽃들이 향기로 손짓하네

우는 것도 예쁜 새

지는 것도 예쁜 꽃

언제나 무엇이나

괜찮다 괜찮다 나를 위로하니

두려운 이별이 두렵지 않네

잊혀져도 좋다고

마침내 고백하며

하늘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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