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짜다면 짜다’. 식당 영양사 또는 주인장 ‘명언’으로 유명하다. 대문짝만한 현수막에 강렬한 필체로 적혔다. 꽤 오래전부터 온라인상에 널리 퍼졌다. 원작자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놓고 ‘표절’한 아류가 전국 동네 식당 곳곳에 걸렸다. 참말이든 헛말이든, 손님의 신뢰를 얻는다. 적어도 씩 웃게 만든다.
이 문장이 지금도 명언으로 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손님은 왕’이라는 마음가짐이 잘 압축돼있어서다. 손님 중에는 입맛이 유독 까탈스럽거나 터무니없이 트집 잡는 ‘진상’도 많다. 이들의 소소한 불평불만까지 꼬치꼬치 받아주기 어렵다. 그래도 주인장은 토 달거나, 변명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수십 년 전통 손맛이나, 장인의 자부심도 손님이 아니라고 하면 바꾸겠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 손님 기분에 공감하고, 고집부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어떤 재료나 양념으로 볶고 튀기고 조리든 모두 다 손님에게 맞추겠다는 거다. 손님 말을 귀담아듣겠다는 배려다.
손님이 짜다는데 “짜지 않다”고 하면 시비가 붙는다. 갈등의 불씨가 된다. “염분 농도는 몇 퍼밀(‰)이며, 기준치를 넘지 않는다”는 투로 가르치려 들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그래서 ‘손님이 짜다면 짜다’ 이 한 문장에는 재미를 넘는 무게가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삼중수소가 1만 베크렐이니 62만 베크렐이니, 세슘 스트론튬이 알프스(ALPS)로 제거되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는 저마다 기준이 다르고 주장이 엇갈리니 일단 논의 범위 밖에 두자.
대신 눈앞에 벌어진 ‘현상’을 보자. 국민은 불안하다. 부산의 대형마트 소금 진열대가 비었다. 마트에서 발주한 소금이 도착하기도 전에 식자재 매장에는 줄이 이어진다. 마트 측은 부랴부랴 ‘소금 1인당 1개 한정’ 안내문을 붙였다. “오염수 방류 후 만든 소금은 먹기 꺼려진다”는 손님, “소금이 동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이라는 직원.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매장마다 수산물 방사능 오염 측정기를 도입했다.
지난 13일 부산해양수산청에서 열린 해양수산부 ‘수산물 안전 현장 설명회’. “대통령도 오염수를 먹겠다고 해야 한다”는 거친 발언이 나왔다. 전날 성난 전국 어민은 물때에 맞춘 생업을 포기하고 국회 앞에 몰려갔다. “바다가 아니면 먹고살 수 없다”며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토했다. 바닷물을 걸러 식수로 사용하는 선원들은 “생명이 위험하다”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했다.
국민은 이리 불안하다는데, 정부는 ‘과학’과 ‘수치’를 앞세워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불안하다는 국민 목소리는 ‘괴담’이 된다. “짜다”는데 “짜지 않다”는 것과 별반 다름없다. 그러니 자꾸 갈등이 생긴다. 주변국 대응은 사뭇 다르다. 태평양 섬나라들은 일본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지 내무부 장관은 일본 방위상 앞에서 “그렇게 안전하다면 왜 오염수를 일본 내에 두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중국은 “태평양은 일본의 하수도가 아니다”며 날을 세운다. 국민은 불안하다는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주는 정부가 필요하다.
‘과학으로 실패한 전례’는 가까이에 있다.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은 2014년 8월 완공됐다. 1255억 원이 투입됐다. 95억 원을 들여 수도관 매설도 끝냈다. 그러나 삼중수소를 비롯한 방사성 물질 논란으로 2018년 1월 가동을 완전히 멈췄다. 고리원전이 문제였다. 과학과 수치는 도움이 안 됐다. 부산시는 각종 과학적 근거를 내밀며 안전하다고 홍보했지만, 불안한 시민은 거부했다. 하필이면 오염수 논란이 불거진 지금, 시가 해수담수화 시설 재가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린다고 하니 시민 불안은 더 커질 게 뻔하다.
정부는 국민 불안에 공감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꼬치꼬치 소소한 불평불만이라 해도. 불안하다는 국민에게 안전하다고 강요할 일 아니다. 과학이 백번 옳다 해도. 동네 식당도 그렇게 장사하지 않는다. 손님이 짜다면 짜고, 국민이 불안하다면 불안한 거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권혁범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