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가로의 존치와 철거에 관한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동서고가로는 1994년 12월 24일 학장램프에서 사상IC 구간까지의 2단계 구간이 마무리되면서 전체 길이 14.8㎞가 개통됐다. 1998년 문현로타리에서 감만동까지의 우암고가도 연장 개통됐으며 왕복 4차로로 진·출입 램프가 10곳 정도 있는 국내 최장의 도심 고가도로다.

동서고가로는 지금까지 두 가지 큰 역할을 담당했다. 첫째는 부산항을 향한 컨테이너 운반 차량들의 빠른 물류 이동과 특수차량으로 인한 시내 교통체증의 완화이다. 둘째는 김해공항과 남해안 고속도로의 서부산 지선을 통해 부산에 들어오는 여행자들을 최대한 빠르고 좋은 도로환경에서 해운대로 이송하는 기능이었다. 주민들은 그동안 동서고가로로 인한 도시경관의 저해, 자동차 소음, 매연, 일조와 조망권의 방해, 생활권 단절, 경제적 활력 상실, 주변 지역의 슬럼화 때문에 일상생활에 늘 피해를 당했다. 동서고가로의 철거 계획이 거론되면서 주민들은 이제야 지난 30년 세월의 피해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기대한다. 지역 주민들의 철거 주장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점에서 더욱더 설득력이 있다.

첫째는 축소 도시의 관점이다. 부산은 더 이상 팽창시대의 고속 성장 단계에 있지 않다. 저출생 고령화 저성장 산업유형의 변화 등으로 인해 도시의 활기와 팽창은 예전과 달리 축소되고 있다. 부산시는 이처럼 축소 도시시대에 대비해 공중공원의 조성과 같은 관리비용이 큰 부담이 될 계획보다 지속 가능한 공원과 녹지확보 방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지자체들이 공공구조물의 유지·관리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공공구조물이 자주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둘째는 부산 도심을 단절시키는 요소의 제거와 연결성의 강화 측면이다. 부산의 도심은 북항에 면한 부산역과 여기서부터 뻗어나가는 철도, 도심철도시설인 범천지구(20만9700㎡), 가야지구(81만8755㎡), 그리고 14.8㎞의 동서고가로에 의해 여러 부분들로 단절돼 있다. 현재 부산시는 이러한 문제의 극복을 위해 ‘경부선 철도 지하화 실행계획수립’ 용역을 추진 중이며 동시에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 중인 ‘지상철도 지하화’에 관한 특별법제정의 논의에 부산 도심의 철도 지하화도 가능하도록 노력 중이다. 지금의 철로가 지하화되고 폐선로가 공원화되면 도심을 연결하고자 하는 장기적인 계획에 동서고가로의 존치는 큰 방해요소가 된다.

셋째는 기대감과 현장감의 인식 차이에서 나오는 견해이다. 부산 거주지역에 따라서 동서고가로에 대한 감각이 다른 듯하다. 매일 고가 하부공간을 걷거나 운전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부산진구와 사상구 주민들은 하늘을 가르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위압감을 실감한다. 동서고가로의 철거로 주민들에게 조망 햇빛 바람 그리고 고요함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거주환경을 되돌려 주는 것은 주거권 보장의 최소한이다.

마지막 관점은 사람의 시선과 새의 시선으로 동서고가로를 바라보는 시점의 차이다. 미셀 드 세르토는 ‘일상생활의 실천’이라는 책에서 일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도시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상의 경험형태는 걷기라고 주장했다. 세르토는 이런 걷기를 멀리서 훔쳐보려는 인간의 다른 측면의 욕망과 대비해서 설명한다. 도시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의 공간은 멀리서 바라보이기만 하는 그러한 공간이 아니라 그들이 헤집고 걸어 다니는 지상공간이다. 즉 누구든 지상에서 걸어 다니면서 경험하게 되는 도시는 이론적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 공간모델이 아니며 매일 치열한 공간적 실천이 행해지는 곳이다.

이처럼 매일 동서고가로 주변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인근 주민들이다. 가능하면 철거된 고가 하부는 도로 다이어트를 통해 더 넓은 인도와 조경을 조성하여 그동안의 피해를 보상하는 차원에서라도 보다 걷기 좋은 도로로 변화시켜야 한다. 일부 존치를 주장하는 환경단체도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에 앞서 그들의 일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 도시의 바람직한 계획과 관리는 물리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을 포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