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울어서 얼굴에 눈물 계곡이 파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누이트족의 ‘오룩의 전설’에 나오는 외로운 사냥꾼이 그랬다. 수평선과 지평선도 없고 사방이 얼음과 눈으로 덮인 백색의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면 울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그이만큼 쓸쓸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시공간 속에서 살아 있는 화석처럼 갇혀 버린 남자, 집도 직장도 이웃도 동료도 친구도 있으나 철저하게 고립된 자, 심지어 배신할 그 누구조차 없단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가.

남자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자살만을 생각한다. 아침마다 수면제, 마취제, 발작 억제제, 아스피린 열다섯 알, 시리얼 한 주먹 등등으로 만든 칵테일을 마신다. 서랍 속에는 권총을 두고, 타일 바닥에는 지뢰를 깔고, 화장실에 단두대를 만들어 놓았으며, 욕조 물속에 헤어드라이어를 켠 채로 집어넣어 감전사를 꿈꾸기도 한다. 가스레인지 후드에는 치명적인 독가스가 살포되도록 꾸며놓고 텔레비전 리모컨에도 아파트를 통째로 날려 버릴 기폭 장치를 설치해두고서, 언제 어느 순간 죽음이 찾아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세심한 설정을 만들었다.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현실인지 상상인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은유와 반어와 역설인지 독자는 혼란스럽다. 이 독특한 주인공에게 찾아온 병명 또한 치명적이다. 혈압이나 당뇨나 골절이 아니라 몸 안에 5.2ｍ 길이의 백상아리가 살고 있다는 진단을 받는데, 이런 진단을 내려주는 의사가 있다는 상상도 특이하다. 남자는 낚싯바늘에 꿴 커다란 살코기 덩어리로 유인하여 상어를 몸 밖으로 내보내려 애를 쓰지만 결국은 실패한 채 불안한 동거를 하게 된다. 대체 백상아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내 속에는 어떤 동물이 살고 있어서 나를 힘들게 하는가. 남자는 세든 아파트까지 개조하기에 이르렀다. 카펫과 마루판을 뜯어내고 콘크리트 바닥에 흙을 채워 실내 정원을 만든다. 나아가 제 방에 사과나무를 심어 열매를 따 먹는다는 상상력은 가히 압권이다. 재미있는 것은 더 이상 연락하지 않고 관심조차 없는 친구들의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이다. 묘지 관리인을 돈으로 매수하고 여섯 개의 관을 사서 주검도 없이 땅속에 묻고 합동 영결식을 치른다. 이 시대의 부조리와 소통과 단절에 대한 냉소와 조롱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 독특한 남자는 누구인가. ‘완벽한 하루’는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작가 자신이 겪었던 느낌과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고 했으므로, 주인공은 마르탱 파주의 분신이며 그의 에세이라 칭해도 무방하다. 혼란의 시기를 겪은 어느 한때를 회상하며 “나는 실패하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은 허무주의에 빠져 시니컬한 사고방식으로 생활하는 우울증 환자 같았다. 거기다가 술고래에 지나친 골초였고 자명종이 울리면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매일 죽고 싶었다”고 했으니까.

인간이 우울한 일상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세상에 믿는 것이라곤 없고 한 줄기 희망의 빛도 바라지 않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난 웃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생이 허무할수록, 삶이 불안할수록 정면으로 대적하고 싸워나가야 한다. 통쾌한 풍자와 엽기적 유머와 광기에 가까운 웃음이 두려움을 떨쳐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절망하지 말자. 절망의 난간에 있을수록, 더군다나 사람 때문이라면, 더더욱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말자. 누구라도 함부로 내 인생을 뒤흔들 수 없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그가 대단한 인물인가. 예수나 붓다나 공자가 아닌 이상, 나를 힘들게 만든 자의 행동과 그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고통스러운 것은 모두 나의 아상(我相)이니 스스로 결정하고 떠나오고 잊어버릴 것. 자신의 생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법. 책의 결미에서 남자의 구토에 드디어 몸 안의 백상아리가 빠져나와 거리로 헤엄쳐나간다. 자신을 불태우고서야 비로소 상어 추방에 성공하게 되는 것처럼, 내려놓고 나면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