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제구 연산2동 황령산 기슭의 ‘물이 많은 골짜기’라고 이름 붙은 물만골은 부산의 대표 빈민촌이다. 국제신문은 이곳에서 두 달 동안 생활하면서 물만골의 어르신들로부터 공동체 결성과 지하수 관정 등 마을의 역사를 들었고, 마을의 자랑이었던 ‘물만골공부방’에서는 소외와 빈곤을 공동체 정신으로 극복하려한 마을의 또다른 역사를 확인했다.
지금은 누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고 있고, 왜 이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지를 살펴보는 데 취재력을 집중했다. 막노동을 하거나 일용직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았는데 여성 고령자가 많은 마을에서는 작업장 하나 없이 집안에서 포장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도 쉽게 볼 수 있었다. 30, 40대 남자 기자들도 힘든 일이었지만 이들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장시간 허리와 무릎 한 번 펴 보지 못하는 고강도 노동을 했다. 예상보다 더 열악했던 주거 환경은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석면이 검출되는 슬레이트를 철거하지 못하고 그 위에 패널을 입혀 덧대어 사용하는 세대가 상당수다.
조심스럽지만 물만골의 새로운 내일을 엿볼 수도 있었다. 전국 각지의 미술학도를 불러모으는 ‘숲민화갤러리’와 서면 과일주스의 원조에서 이제는 호박식혜의 장인으로 거듭난 주인장이 만든 ‘물만골 휴게소’는 물만골이 각각 문화예술생태촌과 휴식·안식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마을 주민인 노인 요양보호사가 마을 주민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를 찾아내 고령화가 심각한 마을 안에서 돌봄과 노인일자리를 한 데 해결할 수 있는 ‘물만골 모델’도 발굴했다.
하지만 취재진은 이번 물만골 생활 취재를 통해 가난과 불편에 익숙한 주민의 체념과 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 저변의 혐오, ‘무허가 건축물에 사는 주민’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당국의 무관심을 직접 경험했다. 특히 물만골 주민을 위한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기사가 나가자 주민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반응이 잇따랐다. “마음대로 무허가 건축물 짓고 지금껏 살아놓고 이제와서 불편 타령이냐”는 표현은 매우 점잖은 편이었다. “열심히 살면 될 것을 왜 세금을 들여 지원해야 하냐” “희망도 없는 곳에 뭣하러 세금을 낭비하느냐”며 원색적으로 주민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반응도 상당히 많았다.
개인이 무능력하고 게으르다고 반드시 가난과 실패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자급자족의 농경사회가 아닌 이상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어려움과 힘듦에는 개인 사정과 함께 사회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 우리 사회는 ‘공정’을 내세운 능력주의의 잣대로 약자 보호를 위한 국가와 사회의 안전망 구축을 거추장스럽고, 형평에 어긋나는 ‘불공정’이라고 여긴다. 이들이 왜 어려움에 처했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국가와 지자체, 지역사회가 어떤 도움을 주면 되는지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작금의 세태다. 이런 상황에서 관할 연제구는 물만골 환경 개선을 위한 국제신문의 제안에 건건이 “무허가 건축물이라서 안 된다”는 취지의 답변으로만 일관했다. 구의 적극 행정을 기대한 바는 아니지만 고민의 흔적 조차 없는 ‘영혼 없는 답변’을 받아보니 물만골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있었다.
국가와 사회는 사적 영역에서의 경쟁 구도에 끼어들 여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고 이들을 배려하면서 공동선을 이루는 데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우리 사회가 합의한 국가의 최소한 역할이자 의무다.
“슬레이트에서 석면이 나오는 거 우리도 잘 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철거하고 개량하는 비용도 생각해야 할 것 아니냐”는 물만골 어르신의 푸념이 귓가를 맴돈다. 가난을 동정하거나 원주민의 생활상을 그저 흥밋거리로 다루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들어간 물만골 탐구생활 프로젝트가 부산 도시 빈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국가와 지자체, 나아가 부산의 지역사회가 튼튼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밑거름이 되길 기원한다.
송진영 기획탐사팀장